2024.09.28 (토)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Agriculture] 권숙찬 정성농장 대표

포기 모르는 당찬 농사꾼 녹색에서 풍요를 찾다

FTA 타결 등 대외적으로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가 확대되면서 국내 농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전문 경영을 통한 신품종 개발 등으로 경쟁력을 높여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경기도의 농업전문경영인들이 타의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새로운 농업 모델을 제시해 최고급 농산물을 생산 공급함으로써 농가 소득 증대까지 꾀하고 있다.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 제도는 경기도가 산하 농업기술원 주관으로 지난 1992년 제정해 해마다 10명씩 도내 31개 시?군 후보들 중 엄선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의 농업 발전 뿐만 아니라 농가 소득 증대에도 기여해 경기도 농업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이에 매월 한 명씩 경기도농업기술원과 공동으로 농업전문 경영인을 소개한다.

글 l 이창남기자 argus61@kgnews.co.kr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하니, 이 세상 끝까지 하니, 달려라 하니”

어릴 적 인상 깊게 봤던 만화 가운데 하나인 ‘달려라 하니’의 OST 중 일부다. 참고로 노래는 가수 이선희씨가 불렀다. 하니의 이미지는 어떨까. 내 눈에 비치는 하니는 원기 충만하고 꾸밈이 없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천방지축. 이름 앞에 붙여 천방지축 하니로 통한다.

이 만화는 작가 이진주가 그려 지난 1988년 초기 방송용 애니메이션으로 전파를 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작가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윈 소녀 주인공 하니가 역경을 딛고 육상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만화 속 하니는 키가 작지만 당찬 소녀로 나온다. 원래 경쟁자인 나애리처럼 키가 큰 소녀로 하니를 묘사하려 했다고 한다.

만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엄마를 여의고 홀로 아파트 옥탑방에서 사는 하니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만난 홍두깨 선생과 함께 육상선수로서의 꿈을 키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빠의 새연인 유지혜에 대한 분노, 라이벌 나애리에 대한 경쟁심으로 인해 놀라운 스피드로 달리지만 하니는 번번이 실패해 자신의 한계를 실감한다. 그러나 포기란 없었다. 하니는 결국 최종 결승 달리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행복한 결말로 내용은 마무리 된다.

경안천을 걷다 만화 속 주인공 하니를 만나다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일산리 341 한국외국어대 사거리 맞은편 경안천을 따라가다 보면 만화 속 주인공인 하니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 있다. 올해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선정한 2010년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으로 선정된 권숙찬(60) 정성농장 대표가 주인공이다.

권 대표는 자신이 어릴 적 성장한 환경과 조건부터 특이했다. 경북 영양 출신인 그는 청년 때부터 남달랐다. 저마다 공부해서 좋은 학교 나오고 서울(한양)로 유학을 가서 고시 패스하거나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의사로 개업하는 게 출세의 기준이다. 하지만 권 대표는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천성이 그랬다.

“당시에 영양읍에서 완장을 차며 동네 깡패는 물론이고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것은 무조건 정의의 이름으로 힘을 보여 줬죠” 순간 웃음이 났다. 왜소한 체구에 어디에서 저런 힘이 솟구칠 수 있을까.

그는 영양읍 일원면 일대 동네 골목의 선도 대원을 맡아 봉사했다. 원래 부지런한 성격에 남에게 뒤처지는 걸 절대로 싫어한 성미였다. 하니의 성격과 닮았다. 1등 아니면 거들 떠 보지도 않을 만큼 승부에 대한 집착도 남달랐다.

그 결과 당시 마을 단위 체육대회에 도 단위 대표로 나가 도에는 승부기를 넘겨주는 대신 양은냄비 등 각종 살림살이를 상품으로 받아오기도 했다.

그의 청년 시절 에피소드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그 때 그 시대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것 같다. 그의 레토릭은 간결하면서도 솔직하다.

1등 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최고가 아닌 차선은 아닌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의 언어 사용은 정통 경상도 영양 사투리의 그것처럼 구수하고 순수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실제로 겪은 것처럼 익살맞고 유쾌하게 들렸다.

누가 농사꾼 아니랄까봐. 권 대표는 자신의 손마디와 손바닥을 보여줬다. 그의 보들한 입술과는 달리 손은 말 그대로 땅과 함께한 고난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다.

 

 


20살 때부터 사업가 면모 발휘

권 대표는 20살 청년 때부터 사업가다운 면모를 발휘했다. 당시 영양읍에서 서점을 운영할 정도면 부자로 간주 받을 만큼 위세가 컸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쓰린 경험을 할 때가 이 때이리라. 그의 서점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터졌다. 서점도 남좋은 일이다. 그는 돈 벌 욕심이 애초부터 없었다. 당시 29살인 청년 사업가 권 대표는 이 때 결혼을 했다. 당시 치곤 꽤 늦은 나이다.

“당시 상황은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서점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생활이 너무 어려워 결국 자녀를 둘 밖에 두지 못했다. 아내를 고생 시킨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권 대표는 소주잔을 목 깊숙이 넘기며 옆 자리에 앉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권 대표 부부의 인생 스토리는 여기부터 시작된다.

영양에서 사업에 실패한 이후 두 사람은 곧바로 상경해 서울 이문동과 청량리, 석관동 일대에 살림을 차렸다.

당시 권 씨는 건축업에 뛰어들었지만 여의치 않자 다시 안양으로 내려가 큰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결국 수 백 억 원의 빚만 지고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별 수 없이 권씨 부부는 지금의 분당 야탑동 비닐하우스 채소 농가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지냈다. 당시 운이 좋게 돈을 모아 산 땅에 채소를 심기 시작했고, 이후 그 땅은 보상 받아 지금의 용인시 모현면 땅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시설 하우스만 80개동 ‘풍성’함 그 자체

권 대표의 농장은 풍성함 그 자체다. 시설 하우스만 80개 동에 이른다. 이곳 말고도 포곡면 쪽에도 하우스 수 십 여개가 있다. 주 작목은 베이비 채소다. 비행기 기내식으로 많이 쓰이는 그 채소 말이다. 알고 보니 권 대표의 농장에서 자란 베이비채소와 쌈채소만 일년에 180여 톤에 이른다. 연간 수입도 12억 원이나 된다고 하니 그는 성공한 농업전문경영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권 대표와의 인터뷰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정성농장으로 만족할 사나이가 아닐 듯 싶었다. 아니나 다를 까 그는 오는 9월부터 농업 관련 모든 생산물과 재료를 판매하는 온라인몰 유기원 영농조합법인(www.ugione.net)을 발족할 계획이다. 청년시절부터 자라난 이웃에 대한 봉사심과 통큰 사업 수완, 수 차례의 실패 경험으로 그는 이제 완숙한 농업전문경영인이 됐다.

그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꿈? 그거 뭐 살아가는 게 꿈이지 뭐, 이 거 채소나 따서 집에 가 먹어, 요즘 일손이 부족해 죽을 지경이래 고마~” 영양 사투리가 너무 익숙했던지 권 대표와의 작별 순간에도 내내 웃음을 참느라 찌는 여름 무더위도 잊어버렸다.

문의 : 정성농장 (031)332-6210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