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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유창혁 프로9단

‘바둑계의 일지매’ 19줄 정방형의 반상서 인생을 찾는다

조훈현, 조치훈, 서봉수, 이창호에 이세돌까지. 국민영웅의 칭호와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전세계에 가장 먼저 ‘한류’바람을 일으킨 이들의 공통점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프로기사라는 것이다. 가로 세로 19줄의 반상에서 꿈과 희망을 찾는 이들의 맹활약속에 국민들은 때론 함께 기뻐하고 때론 함께 아쉬운 탄식을 내뱉으며 인생을 즐겼다.

글·사진/이동훈기자 gjlee@kgnews.co.kr

 

 


세 상 가장 짜릿한 ‘반집 승부’의 치열한 사선을 넘나들며 수천년 인류 역사와 함께 희노애락을 나눠온 가장 오래된 스포츠. 바로 바둑이다. 학교 교정에서건 노인정에서건 공원에서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동호인만 약 1천만명을 헤아린다는 국민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흑돌과 백돌이 겨뤄 ‘한 집’이라도 많은 사람이 승리하는 단순한 룰을 가진 바둑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마력은 무엇일까?

그 마력에 빠져 어머니가 챙겨준 기보를 악착같이 외우며 독학으로 바둑판과 씨름하더니 나이 열살에 어린이 국수전에서 첫 우승을 시작으로 내리 3연패를 차지하면서 바둑외길인생을 걸어온 대표적 토종기사 유창혁 프로9단. 고3이던 지난 84년 세계아마대회 준우승을 끝으로 피도 눈물도 없다는 프로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유 9단은 최고의 공격 플레이를 선보이며 ‘일지매’라는 별칭 속에 지난 1993년 후지쯔배 우승을 시작으로 1996년 응씨배, 2000년 삼성화재배, 2001년 춘란배, 2002년 LG배를 거푸 차지한 끝에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바둑계의 별’이 됐다. 그런 유창혁을 바라보며 미래의 프로기사란 꿈과 희망을 키우는 꿈나무들이 승부를 겨룬 ‘세계청소년바둑축제’가 펼쳐진 명지대 용인캠퍼스에서 ‘일지매’ 유창혁을 직접 만났다.

재미있어 보여 시작한 바둑, 프로세계 호령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으로 바둑판에 모든 인생이 다 있다”면서 말문을 연 유 9단은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인생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한 평생을 보내는 것처럼 바둑도 마찬가지”라고 자신의 바둑 철학을 간단히 설명했다.

코흘리개 시절 동네 어른들이 바둑두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훔쳐 보면서 방법을 익히고 한 수 한 수 두는 모습이 너무 재밌어 보여 바둑두기를 시작하게 됐다는 유 9단은 “어린이 국수전 3연패후 어른들의 ‘재능이 있다’는 격려가 바둑인생의 본격적인 시작이 됐다”고 웃으며 자신의 바둑계 입문기를 소개했다.

그러나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유 9단도 사춘기의 열병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서였을까? 유 9단은 한시도 손에서 놓을 줄 모르고 밤을 하얗게 샐 정도로 좋아하던 바둑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만둔다. 그러나 침묵후에 터진 함성은 언제나 더욱 크게 울리는 법. 바둑과 완전히 담을 쌓고 살던 유 9단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다시금 숙명처럼 바둑돌을 집어들었다.

프로입문 2년 신인왕전 ‘우승 맛’

프로 입문 2년인 1986년 신인왕전에서 우승을 맛본 그는 1988년 조훈현과 서봉수란 한국바둑계의 양대산맥을 넘어 ‘대왕전’에서 첫 왕좌를 차지하면서 ‘유창혁 돌풍’의 서막을 알린다.

이어 ‘기성전’과 ‘왕위전’ 우승과 함께 각종 기전에서의 빛나는 성과를 쌓아가던 유 9단은 마침내 1993년 국제기전인 후지쯔배와 진로배는 물론 왕위전, 명인전, 바둑왕전 등을 휩쓸며 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상과 함께 유창혁 시대를 화려하게 열어 젖힌다.

이후 90년대부터는 오랜 시간 한국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 조훈현과 서봉수를 뒤로 밀어내고 ‘돌부처’ 이창호와 함께 새롭게 라이벌 시대를 연 유창혁의 전성기로 꼽힌다. 숱한 감탄 속에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에 생생한 명승부들을 만들어 내던 유창혁은 2002년 월드컵 4강의 감동속에 바둑인 최초로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

 

 


유창혁 바둑도장 개원, 후진양성에 주력

계속해서 국내외 기전을 석권하며 세계바둑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기던 유 9단은 지난 2005년 “내 손으로 세계 1인자를 키워내고 싶다”는 오랜 목표를 실행에 옮긴다. 바로 성남시 분당에 ‘유창혁 바둑도장’을 개원하고 본격적인 후진 양성에 뛰어든 것. 세계대회를 스무번 넘게 우승하며 끝없이 내달리던 유 9단은 “재주 있는 꿈나무들이 기초훈련없이 손끝의 승부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순식간에 세계 정상을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마음이 급했다”면서 “제대로 된 바둑꿈나무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해 바둑본가 대한민국의 명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바둑이 세계 제일로 손꼽혔지만 지금은 중국이 급성장해 라이벌 관계에 있다”는 유 9단은 “바둑 활성화를 위해 후진 조련에 노력하고 있지만 어린이 바둑대회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게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일까. 유 9단은 2010세계청소년바둑축제의 심판위원장을 기꺼이 맡아 현장지도 일선에서도 맹활약중이다. “세계청소년바둑축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회로 앞으로 더욱 발전될 것”이라면서 “해외선수들이 많이 참가했다. 앞으로 유럽 등 서양권에서도 많이 참여하고 서양권 선수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보이면 바둑 자체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10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바둑이 반드시 금빛 환호를 전해줄 것이라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은 오늘도 가로·세로 19줄에서 꿈과 희망을 찾는 승부는 계속된다고 덧붙였다.

“반드시 세계 정상에 올라 후진 조련과 최일선 승부가 양립할 수 있음을 꼭 보여 주고 싶다”는 유 9단은 “한국바둑에 대한 아낌없는 관심과 성원, 박수를 기대한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유창혁 9단 약력

▲1966년 4월 25일 서울 출생
▲1983년 아마국수전 우승
▲1984년 세계아마대회 준우승 프로 입단
▲1990년 기성전 우승, 대왕전 준우승
▲1993년 후지쯔배, 진로배, 왕위전,명인전 바둑왕전 우승
▲1996년 응씨배, SBS연승전 우승, 9단 승단
▲2002년 LG배 우승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최초 달성)
▲2003년 도요타덴소배, 춘란배, 국수전, 기성전, 왕위전, 명인전, 패왕전 우승
▲2007년 중환배 우승 (세계대회 통산 21번째 우승)
▲2009년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
▲2010년 농심신라면배, 국수전 우승 세계청소년바둑축제 심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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