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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마지막 승부' 가수 김민교

“안양천 물길 따라 운동하고 음악작업하고 있어요”

 

 

숨길 수 없었던 가수의 ‘끼’
 

 

그는 원래 89년 MBC 강변가요제 출신이다. 그룹 ‘옥슨89’의 리드보컬로 출연해 금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운 좋게 마지막승부 주제가를 부르면서 인기를 끌었다. 94년 당시 KBS 10대가수상, MBC 7대가수상까지 거머쥘 정도로 ‘드라마 효과’는 컸다.
글 l 민경태기자 mkt@kgnews.co.kr
사진 l 최우창기자 smicer@kgnews.co.kr

김민교 씨의 남다른 목소리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노래를 불러라’하면 대부분 그의 이름이 지목됐다.

“초·중·고등학교 당시 학교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 나와서 노래불러봐’하면 선생님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저를 쳐다보았고, 어쩔 수 없이 제가 나서서 노래를 부르면서 분위기를 띄우게 됐다. 한번은 전교생이 모인자리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자연스럽게 흥분이 되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까지만 해도 반에서 10등 정도 했었던 김민교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사춘기의 호기심으로 성적이 떨어졌다고 한다.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을 올라오게 되면서 친구들이 야한 잡지를 보는 것을 알고 따라서 보게 됐다. 당시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펼쳐 진 듯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웃음)”

 


건국대 록음악그룹 ‘옥슨’과의 인연

그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음악’과 ‘운동’이었다. 그래서 음악을 하기 전까지의 꿈은 ‘야구 선수’였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참 좋아했다. 음악도 좋아했지만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첫 번째 꿈이었다. 그래서 대학교도 체육교육학과로 입학하게 됐다. 하지만 야구선수가 되는 것보다 ‘가수’가 되고 싶었던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고 있다”

김민교 씨는 ‘옥슨’ 오디션 때 8년 선배인 홍서범과의 에피소드에 대해 말을 이었다. 김민교 씨가 록음악그룹 옥슨의 오디션을 봤을 때 이미 홍서범은 방송에 출연하는 인기 연예인이었는데, 홍서범은 늘 옥슨 후배들을 뽑을 때 오디션 심사에 참가했었다는 것.

김민교 씨는 “교내 게시판에 드럼, 싱어, 기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옥슨에 지원하게 됐다”며 “오디션 때 홍서범 선배가 직접 심사를 맡았는데 67.3점을 줬다”고 말했다. 오디션 때 홍서범은 “김민교, 우리 학교의 제2의 교가인 ‘불놀이야’와 내 노래 중에 가장 높이 올라가는 ‘걷잡을 수 없어요’를 부르고 네가 좋아하는 노래 2곡 해봐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에 김민교 씨는 “있는 힘껏 노래를 불렀는데 그 때 좋게 봐 줬는지 나중에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 67.3점을 줘서 다소 실망하긴 했는데, 다른 선배들이 홍서범이 준 67.3점은 역대 최고의 점수였다고 말해서 기분이 좋았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 후 ‘마지막 승부’가 한 순간에 인기를 끌게 됐고 김민교라는 가수를 대한민국에 알리게 됐다.

“정말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자면, 원래 이 곡은 사랑을 이야기 하는 곡이었다. 하지만 드라마 PD가 이 곡을 마음에 들어했고 드라마 방송 나가기 3일전에 가사를 부랴부랴 고쳐서 다시 녹음하게 됐다. 그 당시 마지막 승부의 가사를 써준 분이 강은경 씨다”

하지만 인기에 비해 그의 손에는 돈이 쥐어지지 않았다.

“당시 연예기획사들 대부분이 노예계약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승부를 부르고 난 뒤 결혼을 하게 됐는데 수중에 가진돈이 900만원 정도였다. 그래서 집을 구할 때도 대출을 받았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가수 생활이 눈에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11년만의 컴백, 그리고 찾아온 위기

그리고 그는 2005년, 방송 활동을 중단한 지 11년 만에 컴백, 화제를 낳았다. 세미 트로트를 들고 컴백한 ‘승부사’. 김민교는 노래뿐 아니라 사람 좋은 미소로 각종 오락 프로그램을 섭렵하며 제2의 전성기를 일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신은 그에게 또다른 승부를 요구했고 그 숙제는 넘기 힘든 난제였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암! 하지만 ‘승부사’ 김민교에게 암은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아니었다. 생명을 담보로 한 싸움에서 멋지게 승리한 김민교의 금의환향이 멀지 않았다.

이 당시 김민교는 11년 만에 가요계에 컴백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2005년 10월 복통으로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암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를 서서히 괴롭히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이 암덩어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단지 배가 아파, 자신이 살고 있는 경기도 평촌의 개인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이후 큰 대학병원에서 자세한 진단을 받았고, 진단 결과 암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담당의사 는 “불행 중 천만다행”이라는 말로 안도의 한숨을 쉬게 했다고 한다. 그의 위에서 발견된 암은 초기였고 너무도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

“1월 6일 병원에 입원했다. 다른 사람들이 새해의 희망을 얘기할 때, 그야말로 죽음에 직면하여 간절히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리 암 진행 초기라지만 위의 70%를 절제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쉬지 않았다. 암 진단을 받고도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와 청주방송에서 있었던 ‘전국 가요톱텐’ 등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방송활동을 했다. 자그마치 11년 만에 다시 찾은 인기와 팬들의 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열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김민교 씨는 이제 2010년 말에 또다시 컴백 무대에 서게 된다.

김민교 씨는 “이번 내 앨범에는 박현진 작곡가와 이건우 작사가가 힘을 모아 좋은 곡을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이번 앨범에 내 온몸을 바칠 생각이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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