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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 문응식 대신원예 대표

어! 이거 도자기야 분재야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평생 직업인데 후회는 무슨?
분재 손질하고 있으면 온갖 잡념이 사라져요

오묘한 비취색과 우윳빛 청?백자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아름다운 수태(樹態)를 뽐내는 분재는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장구한 세월, 이들 분야에 종사한 장인들은 명품끼리의 결합이라는 발상조차 하지 않았다. 한 몸이 되는 것이 굳이 불편한 관계인 것은 아니나 개체 하나만으로도 대접받기에 충분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1990년대 후반, 이들이 한 지붕아래 가족이 된 모습을 본 순간은 경이 그 자체였다. 가을 하늘색을 닮은 청자에 심겨진 단아한 소나무와 향나무는 또 하나의 명품탄생을 예고했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간 장본인은 과천시 주암동에 소재한 대신원예 문응식 대표다.

글|김진수기자 kjs@kgnews.co.kr 사진|이준성기자 oldpic316@kgnews.co.kr


 


고 향이 함평인 문응식 대표는 철들 무렵 화훼농사를 사촌 형님의 원예비닐하우스를 들락거리면서 장래 희망을 그 쪽으로 일찌감치 정했다.

중학교 졸업 후 농업고등학교 진학을 원했던 그에게 아버지는 “인문고교를 나온 후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일렀다.

표정은 부드럽고 말은 나지막했으나 눈빛은 거역하지 말라는 뜻이 강하게 담겨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재학 시에도 원예에 관심을 놓지 않았던 문 대표는 졸업 후 천안 연암대 원예학과를 지망했을 때도 부친은 서울 대학에 나와 펜대 굴리는 직업을 택하길 은근히 원했으나 그는 뜻을 꺾지 않았다.

대학교 진로를 걱정하던 시절, 연암대 카탈로그에 식물배양 사진과 글을 보고 “여기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군대 제대 후 얼마간의 공백기를 거친 뒤 그는 중국과 일본 춘란을 수입, 국내 판매하는 것으로 창업을 시작했다.



재배농장 실습 나가는 것이 밑천

대학시절 현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난 재배농장에 실습을 자주 나간 것이 밑천이라면 밑천이었다.

“당시만 해도 난의 상품가치를 일반 대중들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시절이라 난 분류를 체계적으로 배운 덕에 상중하로 구분해 판매한 것이 판촉을 상공한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볼 수 있죠.”

1993년 서울 변두리에 작은 사무실 하나 달랑 얻어 시작한 사업은 대성공을 거둬 한 때는 큰 돈을 만졌다.

그러나 호황은 1997년에 터진 IMF의 거센 파도 앞에 모래성같이 무너져갔다.

환률 급등에 수입을 하면 할수록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입을 중단하고 국내생산물로 대체했으나 당시만 해도 난을 대량생산하는 곳이 드물어 탈출구가 절실했다.

심심파전으로 민속주병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나무나 난초를 심기 시작한 것도 그 때쯤이다.

“다 먹고 버리는 주병을 재활용할 방안이 없을까 생각하다 장난삼아 만들어보았지요”

도구래야 망치와 못, 끌을 사용했으니 물건이 오죽했거니 짐작이 간다.

쉼 없는 수작업 끝에 엉성하나마 제법 모양새를 갖춘 주병 분재는 이웃과 친척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런데 엉성하게 뚫은 구멍에 심은 나무는 신기하게 잘 살아줬다. 이걸 어디 제대로 상품화시켜 봐야겠다는 욕심이 슬며시 치밀어 오르더군요.”



심심풀이 땅콩이 또 하나의 명품 태동 예고

심심풀이 땅콩이 또 하나의 명품 태동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수작업만으론 대량 생산이 어려워 여주, 이천 등지의 유명 전통도예가에게 의뢰했으나 구멍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뚜껑 맞을 확률이 낮다며 거절했습니다.”

150개 들이 한 가마에 완성품이 고작 3~5개 밖에 되지 않아 하루에 수십 번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으나 오기 하나로 버텼다.

수백 가마에 돈을 쏟을 붓고서야 완성품 비율이 80%까지 올라갔다.



‘도자기랑 나무랑’ 대중들에 첫 선

너랑 나랑 친구 같은 다정한 어감을 주는 ‘도자기랑 나무랑’이란 이름표를 달고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인 것은 1998년 봄, 궁내동 서울톨게이트였다.

“차량들의 매연에 새벽 4~5시에 현장에 달려가 잎을 닦아줘야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도자기를 본 사람들은 희한하다는 것이었지요.”

도자기에 분재를 접목시킨 발상은 그 당시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만큼 화훼업계는 화훼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도자기랑 분재랑’은 그 뒤 서울 호텔로비와 백화점 전시실, 대학병원에 전시를 시도, 홍보하는 전략은 먹혀들어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자의 미와 나무가 주는 자연스런 곡선미와 우아함과 만남은 아름아름 바다 건너 일본, 미국, 대만에까지 퍼져 수출하기도 했으나 검역이 강화된 후 중단했다.

초기 단순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를 시도했고 청자는 중국이 끝내 흉내를 못냈다는 상감청자가 주종을 이룬 가운데 백자와 분청까지 영역을 넓혀 다양한 수요에 부응했다.

‘나무랑 분재랑’외 조직배양을 통한 특허출원을 받은 난 등의 신품종은 농림부 주최 신상품 공모전 은상, 고양 세계꽃박람회 농협중앙회장상, 안면도 꽃박람회 충청남도 도지사상 등 온갖 상을 품에 안겨줬다.

 



화훼 특허 140여개 달해

실제 그는 화훼 특허가 140여개에 이른다.

최근엔 잎이 둥글면서 황금색 테두리에 꽃 색깔이 독특한 신품종 대신골드 호접란으로 과천이코체 품평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화훼농가도 이제는 단순 재배에서 벗어나 끊임없는 연구로 소비욕구를 충족시켜야 살아남는다고 봅니다.”

주암동 농장에 진열된 소나무. 향나무, 주목 등 2만여 점의 분재는 긴 세월 그의 손을 거쳐 만든 예술품이다.

선비 같은 자태를 지닌 문인목, 가지가 뿌리 아래로 처진 현애, 오랜 풍설로 줄기가 심하게 굽은 반간, 유연하고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곡간 등등.

모두는 아니더라도 한두 점 갖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라 목구멍에 침만 넘어간다.

“일반인은 분재가 고가이기 이전에 재배하기가 어려워 선뜩 구입을 망설인다.”는 질문에 그는 “환경이 맞지 않으면 죽는 건 당연하다”며 “식물은 햇빛과 물, 통풍, 적당한 영양만 있으면 절대 고사하지 않아 분재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원예 산업이 잘 알다시피 큰 돈 버는 직종은 아니며 특히 분재는 불황을 잘 탄다.”고 말하는 문응식 대표.

그는 외길 인생 20년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웬걸요.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았는데 후회는 무슨. 분재를 손질하고 있으면 온갖 잡념이 사라져요. 정말 나날이 보람됩니다.”

대신원예 문의:02-507-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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