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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임종성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위원장

4·5대 도의원 지낸 부친 임성균씨로부터 정치감각 키워
교육도시 만들기 일념 교육위원장 버리고 도시환경위 택해

 

‘광주 임꺽정’은 고집과 신뢰로 얻은 값진 별명

“아버지를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아버지를 닮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임종성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윈회 위원장(46·민·광주1)의 아버지는 4대와 5대 도의원을 역임했던 임성균 前도의원이다. 임 위원장의 아버지인 임성균 전 의원은 새벽 1~2시에 걸려오는 민원전화에도 한걸음에 집을 나설만큼 지역민을 위하고 현장을 중시하는 의원이었다.

임 위원장은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의회와 현장을 따라다니며 정치감각을 익히다 보니 현장 중심의 정치가 몸에 밸 수밖에 없었다. 임 위원장은 태풍 곤파스가 왔을 당시 본인도 차가 물에 잠기는 등 태풍의 피해를 입었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며 현장으로 나섰다. 임 위원장은 “아버지가 의원시절 수해현장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현장을 확인하고 곧바로 대처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으셨다”며 “아버지를 본받아 태풍 곤파스가 터졌을때 곧바로 남한산성으로 달려가 쓰러진 소나무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등 현장 정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순수한 자원봉사 정치 시절 그리워

임 위원장의 정치 경력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임 위원장은 평화민주당에 가입하면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임 위원장은 “대통령선거 당시 저와 친구들은 평화민주당 깃발을 들고 사람들을 모았다”며 “그때만해도 그룹정치로 직접 발로 뛰며 사람들을 동원하고 자기 돈으로 밥 사먹고 자기 돈으로 차 타고 다니는 자원봉사 정치였다”고 회상했다. 정치 이념과 신념만으로 그것에 올인 할 수 있는 당시의 정치가 무척이나 그립다고 했다. 임 위원장은 “2004년에 열린우리당에서 국회의원에 나와보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민주당을 사수하고 제의를 고사했다”며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드는 과정도 그렇고 민주당만을 위해서만 걸어왔다”며 외길 정치인생에 대해 흐뭇해했다. 아버지의 선거가 끝나고 임 위원장도 자연스럽게 도의회 입성을 준비했다. 한나라당이 싹쓸이를 했던 당시 임 위원장은 꼬마민주당에서 20.4%라는 서울·경기지역에서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다. 당시 꼬마민주당 지지율이 4%였던 것을 생각하면 도민들의 지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임 위원장은 “당시 낙선을 하고도 당선자의 인사보다도 먼저 광주시민들에게 지지해줘서 감사하다는 연설을 했었다”며 “낙선 후 곧바로 지역 행사에 참석하고 각종 단체 활동도 열심히 하니 시민들이 좋게 봐주셨다”고 말했다. 그 결과 보궐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강세라고 여겼던 광주 지역에서 당당히 도의원 뺏지를 달게 됐다.

‘광주의 임꺽정’ 광주시민들의 신뢰의 표현

지역구에서 임 위원장의 별명은 ‘광주의 임꺽정’이다.

공약한 것은 무조건 실천할 것이라는 광주시민들의 믿음의 표현이다.

임 위원장은 “광주시민들이 아버지와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부족하지만 실천한다는 믿음을 표로 보여주신 것”이라며 “그런 사랑을 보여준 시민과의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임 위원장은 정말 단순하면서도 꼭 필요하고 지킬 수 있는 공약만 했다. 거창한 공약을 할 수도 달콤한 공약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공약이었다면 모르지만 모든 공약은 혼자만의 공약이 아닌 민주당과 도민, 그리고 집행부가 모두 함께 이뤄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있는 공약을 하려고 했다”며 “제1공약이었던 무상급식이 실현됐는데 이것은 정말 민주당이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호응해준 도민과 현장에서 같이 뛰어준 시의원 등의 힘이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올 가을에 나오는 이번 임 위원장의 의정보고서에는 이런 멘트가 달릴 것이다.

“무상급식 해냈습니다. 경기도민과 함께 해냈습니다”

교육의 발전을 위해 도시환경위원회를 택했다

임 위원장은 8대의회 교육위원장 1순위였다.

임 위원장은 “교육위원장 제의를 받았을때도 도시환경위원회에 가겠다고 했다”며 “교육위원회에 있으면 학교 내부개선과 환경개선은 해줄 수 있지만 궁극적 목표인 교육발전을 통한 교육도시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환경위원회가 제격이었다”고 설명했다. 도시환경위원회의 소관부서인 도시주택실을 포함해 환경국을 접합시키면 광주시에 뭔가 좋은 선물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서다. 임 위원장의 지역구인 광주시는 시로 승격한지 10년이 지나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돼 인구가 80% 이상이 늘었다. 인구만큼 학교도 늘어나야 정상이지만 학교는 2~30%밖에 늘어나지 않아 교육환경은 열악한 상황이다. 그 이유는 바로 각종 규제. 그린벨트를 포함해 자연녹지가 많다보니 학교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많아도 각종 규제로 인해 학교가 들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광주시에 상수원보호구역이라고 각종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환경고등학교 등 특수고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다”며 “기숙시설을 갖춘 환경고등학교를 만들면 환경을 전공한 유능한 인재들이 대학에 들어가 연구활동을 벌여 자연스럽게 기후변화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수당때의 설움 누구보다 잘 알아

7대 경기도의회는 한나라당의 일당체제였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의원 108석 전체가 한나라당 의원들로 채워졌다. 그나마 민주당의원들은 재보궐선거를 통해 의석수를 채웠지만 교섭단체로서 한계가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임 위원장은 “보궐선거를 통해 민주당 의원들이 도의회에 입성하면서 교섭단체가 됐지만 한나라당에서 인정을 안했다”며 “협상테이블에 나가서 의견을 주장해도 무조건 그런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소수당의 의견을 묵살당하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5대 도의회때도 무소속과 자민련 의원들을 연대해 12명을 만들어 교섭단체를 인정해준 포용의 정치를 했었다”며 “상생 정치를 통해 반대 목소리가 나와야 진정성이 있는 합리적인 해법과 대안을 찾을 수 있는데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8대 의회에서는 국민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여야를 바꿔주며 중앙정치는 아직 민주당이 야당이지만 도의회에서만큼은 야당속의 여당이 됐다”며 “소수당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소수당 출신 의원님들의 의견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 위원장은 적어도 도시환경위원회에서는 한나라당 의원이든, 진보신당의 의원이든 다수당과 소수당을 가리지 않고 토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생각이다.

큰 정치를 위한 큰 그림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탐나는 것이 아니고 국회의원으로써 할 수 있는 일들이 탐나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DMZ(비무장지대)에 큰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임 위원장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DMZ가 어찌보면 가장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며 “DMZ에 금융타운을 조성해 홍콩의 금융권을 유치해온 다면 일자리 창출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북한도 먹고 살 수 있는 자급요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이 상상이 현실화된다면 극한 대립속에 가장 평화로운 장소가 될 것이다. 임 위원장은 “장기 플랜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추진만 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정 금융권이 대한민국에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어 “도의원으로는 절대 할 수 없고 일반 국회의원도 추진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며 “하지만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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