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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영 골목잡지 사이다 편집장

<골목잡지 ‘사이다’ 편집장 최서영(49)씨>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유명인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 이웃의 이야기가 진솔하고 가감 없이 담겨져 있을 뿐이다.

지난해 4월 19일 100여쪽 분량으로 세상에 나온 무료 골목잡지 ‘사이다’에는 퇴직 후 집 앞 길다방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주는 79세 할아버지, 공중목욕탕에서 42년간 일해 온 이발사, 동네 의상실을 40년 동안 운영한 60대 여성, 허름한 여인숙과 35년 함께 한 90세 할머니 등 일반 잡지에선 볼 수 없는 골목 사람들의 살아온 세월과 일상이 기록돼 있다.

골목잡지 사이다의 ‘사이’는 너와 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의 네트워크를 말하며 ‘다’는 ‘많다’라는 한자로, 우리 삶의 많은 사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겠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사이다는 창간호 5천부를 찍은 이후 지금까지 계절별로 4호의 잡지가 발행됐다. 창간호는 남수동(행궁동), 2호(여름)는 장안동, 3호(가을)는 북수동을 주제로 잡고 수원 팔달산 자락의 사람·자연·문화에 대한 소소한 얘기들을 다뤘다.

특히 사이다는 발행출판, 인쇄, 기획, 배포까지 모두 편집인이자, 편집디자인 전문업체 더 페이퍼(The Paper) 대표인 최서영(49·여)씨의 자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남다른 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 편집장을 수원 팔달구 교동 아주타워 106호 더 페이퍼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는 수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줬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인터뷰까지 하려니 무척 쑥스럽네요. 저는 외롭고 불안한 삶, 행복해지기 위해 일해야 하는 현실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뿐입니다. 때문에 솔직히 동네에서 노는 것처럼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웃음)”

사이다 창간호 맨 첫 장, 최 편집장이 에세이처럼 쓴 글에 그의 생각은 오롯이 드러나 있다.

‘우리 동네엔 골목이 있었다. 우리 동네뿐 아니라 모든 동네엔 골목이 있었다. 그 길에서는 동네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그 옛날 골목길이 그리웠다. 동네 골목길을 잊고 사는 동안 우리는 공동체를 잃어 버렸다. (중략)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획일화 되어 개성이 없어져가는 지금. 깔끔하고 편리하다. 자극적이고 현란하다. 재미없다. 놀아보자!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 내며’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추억, 주변의 것들에 대한 향수를 쉽게 잊고 사는 것 같아 이를 조금 건드려 준 것뿐”이라는 그에게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순수하고 진지한 열정,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이 잡지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20년 전 남편이 직장을 옮기면서 서울에서 수원으로 오게 된 최 편집장은 자신이 이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그는 어린이도서연구회 수원지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곳에서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참여해 소식지를 전하는 홍보편집부장을 맡게 된 것.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처음 5명이 시작했는데, 이제는 17기 1천500명에 달하는 회원수를 가진 모임으로 발전하게 됐죠.”

그는 이 일을 하면서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남편과 상의한 끝에 서울디자인아카데미에 입학해 전문 디자인 교육을 받게 된다. 디자인내일(현 내일신문)에선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실무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이들 3~4명과 함께 ‘페이퍼’라는 편집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디자인을 하면서 환경과 역사기록에 관심이 생겼죠. 한 번은 조경업체의 일을 맡아 하면서 공사현장에 인문학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통해 4천장의 사진집을 내기도 했죠. 사진이 색다르다 보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수원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지역을 위해, 지역에서 일하는 이들과 뭔가 함께 일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단지 일이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재밌고 보람된 일을 하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6명과 함께 토론회와 워크숍을 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했지만, 그리 만만치 않았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저는 다양한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지역의 특색을 갖춘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고 싶었죠. 하지만 재원부터 시작해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이러면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제가 먼저 선두에 나서 사고(?)를 치게 됐어요.”

골목잡지가 탄생하기까지 1년 반이라는 준비과정이 소요됐다. 잡지에 관심 있는 30명을 대상으로 디자인 흐름 이해하기, 수원의 역사, 글쓰기, 켈리그라피 등 6주간 교육을 실시했다.

이 중 절반이 탈락했고, 남은 이들과 10주간 잡지 실무교육 트레이닝을 가졌다. 이들과 ‘끼리’라는 동아리도 결성했다.

또 사이다 탄생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능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수원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들도 모였다. 이를 위해 골목잡지를 응원하는 ‘사이다 클럽’, 연간 2회 각 분야의 실무자, 전문가들이 모이는 ‘클럽데이’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경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법인명을 ‘더 페이퍼’로 변경하고, 예비사회적기업으로의 전환을 이뤄냈다.

그는 ‘사이다’가 나오는 날은 동네가 시끌벅적하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과 지역 예술가 등이 모여 다양한 공연을 준비하기 때문이란다.

“처음에는 잡지에 실리는 자체에 대해 의구심을 갖던 동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고 공연에 참여하면서 반응이 확 달라졌어요.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취재를 하면서 저희들이 더 도움을 받고 배우는 거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1월 말에는 남창동을 주제로 한 사이다 4호(겨울호)가 발행됐다. 새로운 시도로 장례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의 배경인 남창동 옛 골목과 촬영지도 소개됐다.

하지만 걱정도 앞선다. 광고와 후원금이 많지 않고, 무료지다 보니 자칫 경영난이 우려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최서영 편집장도 걱정을 했었고, 회의 또한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책을 만든 후 구로의 제본소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40년 간 제본에 종사하고 있는 분을 만난 적이 있죠. 그 분에게 물었어요. 돈도 안 되는 일을 오랫동안 하시는 이유가 뭔지를. 그 분은 ‘역사의 한 부분을 기록하고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도 일하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하더군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사이다 잡지의 미래는 내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계속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덧붙인다. 마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정말 최 편집장의 바람대로 모두 이뤄지길 바라본다.

사진 이준성기자 oldpic316@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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