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류인서
해변으로 떠밀려 와 죽어가는 화면 속의 고래
그 고래 물기 그렁한 눈접시에 담기는 배부른 구름
그 구름 몸 풀어 어린 구름에게 젖 물리는 동안
어린 구름 자라 덩치 큰 고래 구름으로 다시 떠가는 동안
죽어가는 고래 둥근 눈접시 둘레에
백 배속 빨리감기 테잎처럼 되감기며 지워지는 머나먼 낯선 별의, 바깥
류인서 시집 <신호대기/문학과 지성, 2013>
시인의 시집 <신호대기>를 읽으며 제목이 왜 신호대기일까 생각해 보았다. 물기 그렁한 고래의 눈접시 가득 배부른 구름이 몸을 풀어 어린 구름에게 젖 물리는 모습에서 시인은 이 낯설고 이상한 별에 가득 찬 신호들을 수집하고 해석하고 몸소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신호를 타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온갖 신호들 속에서 살고 있다. 서로 겉돌고 있는 신호들 속에서 시인은 어쩌면 방향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고래의 눈접시 속에서 시인은 자신을 불러주는 머나먼 이 이상스런 낯선 별의 바깥인 진정한 내면의 신호를 바라본 것은 아닐까.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