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권혁소
하얀 꽃나무에
하얀 꽃 피었다
작년에도 피었더니
올해도 피었다
작년엔 이리 반갑지 않았는데
올해는 이리 반갑다
권혁소 시집 『아내의 수사법』/푸른사상 28
시간은 항상 흐른다. 하지만 그 흐름을 의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계기를 만나면 문득 깨닫는다. 그 계기는 공간을 의식하는 순간이다. 공간에 거주하는 존재들을 의식할 때다. 젊음이 왕성했을 땐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 고개 들면 어느새 어둠일 때가 많았다. 사랑이라는 무주 공간에 떠 있다가 사랑이 떠났을 때 문득 시간이 흘렀음을 피부로 느끼듯 세월 역시 우리가 정신없이 사는 동안엔 잠시 잊는다. ‘작년에 핀 꽃이 올해도 피었다’고 느꼈을 때 아니, ‘반갑지 않았던’ 꽃이 ‘올해 이리 반갑다’고 느꼈을 때 문득 나이가 들었고 늙었으므로 무상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그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시인은 그런 사람이다./성향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