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리
벌레들은 풀잎에 방구들을 들이는지
그 방구들 연초록 좁다란 아랫목에서
가쁜 숨 몰아쉬며 사랑들 나누는지
비밀스레, 비밀스레 접혀진 풀잎사귀마다
저렇듯 발긋발긋 슬어놓은 알들이라니!
풀잎의 방구들 녹아날 듯
햇빛에 몽싯거리는
저 여린 목숨들,
저 바알간 몽싯거림 안으로 어느 날 문득
애벌레의 길이 잦아들리
멀고 먼 배추밭,
깜깜한 속대까지 길이 열리리
-김명리 시집 <적멸의 즐거움/문학동네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