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젖은 연탄 피우는 연기
움푹 꺼진 부엌에 질팍히 고인 밤이면
우리는 좁은 필통 속
연필처럼 나란히 누웠다
깎아보면 심이 곯아 다 부러져 있는
여섯 자루의 아픈 연필
찬 기운이 기어들지 못하도록
한 몸으로 붙어 누운 새벽
잠에서 깨어나 바라본 유리창은
밤새 여섯 자루의 연필들이 뱉어낸 입김에
온통 눈 덮인 풍경
-시와 미학/ 2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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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순 시인](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1312/367423_92851_2323.jpg)
단칸방이란 말 오랜만이다. 지금은 좀 더 현대화된 시설을 갖추고 원룸이라 부르지만 단칸방과 원룸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 젖은 연탄을 피워놓은 부엌엔 매캐한 연기가 들어차고 방안엔 여섯 식구가 가지런히 누워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깎아보면 서로 부딪쳐 심이 다 부러져 있는 연필처럼 가난한 식구들 부대끼며 사느라 저마다 아픈 상처를 안고 있지만 바짝 몸을 붙여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고 단잠을 자고 난 아침, 그 식구들의 입김으로 유리창엔 화려하게 눈 덮인 풍경화 한 폭 그려져 있던, 춥지만 아름답고 눈가 촉촉해지는 시이다. 문득 두고 온 옛집에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