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젖은
/유병근
텃밭은 조금 더 키가 자랐다
빗소리를 먹고 하늘천 따지 사이에
살이 올랐다 건너편 밭둑의
송아지울음을 먹은 살이 올랐다
그녀 머릿결을 빗방울이 빗질처럼
빗어 내렸다 이랑과 이랑 사이
조금 젖은 송아지 울음이 오고 있었다
빗방울이 된 그녀 어깨 너머로,
저녁밥 뜸 들이는 연기가 젖어 있었다
--유병근 시집 <어쩌면 한갓지다>에서
젖다와 마르다 사이에서 우리는 산다. 그 사이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말라야 할 것은 물론 마를 필요가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마른 것은 머지않아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늘 젖어 있어야 살아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생명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분이다. 그래서 젖어 있음이 살아있다는 증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온 세상은 젖어 있음으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산도 숲도 나무도 풀잎도 젖어 있어야 산다. 사람도 젖어 있어야 살 수가 있다. 몸만이 아니다. 마음도 젖어 있어야 살 수가 있다. 촉촉하게 젖어드는 마음, 거기에서 새로운 생명은 꿈틀거리며 살아나는 것이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