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9 (월)

  • 구름많음동두천 25.6℃
  • 흐림강릉 31.7℃
  • 맑음서울 27.1℃
  • 맑음대전 27.4℃
  • 맑음대구 30.4℃
  • 맑음울산 29.8℃
  • 맑음광주 27.5℃
  • 맑음부산 28.3℃
  • 맑음고창 26.9℃
  • 맑음제주 29.1℃
  • 맑음강화 25.0℃
  • 맑음보은 25.8℃
  • 맑음금산 26.1℃
  • 맑음강진군 27.3℃
  • 맑음경주시 28.1℃
  • 맑음거제 26.6℃
기상청 제공

다산 ‘저술의 탑’ 뒤엔 제자들이 있었다

 

 

인간 한계 넘어선 저작 탄생 도와

사대부·승려 등 다양한 제자들

유배지 강진서 스승과 학문에 헌신

한자 문화권 최대 저술 이뤄



 

 

 

다산학단 문학유산 등 5개 분야 전시

스승 학문정신 체득·실천 결과물 등

자질·개성 따라 다양한 저술 남겨

면면 소개·미공개 유물 최초 공개



 

 

 

‘유배지의 제자들-다산학단’ 특별전

남양주 실학박물관 10월 10일까지

남양주 실학박물관이 24일부터 10월 10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인 강진에서 결성된 다산학단의 활동을 살펴보고 경기도 실학문화의 지역적 전파를 조명하는 특별전 ‘유배지의 제자들-다산학단’을 연다. 내년 강진군 다산기념관과 공동 순회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503권 182책이라는 거대한 저술의 탑을 다산과 함께 쌓아 올렸던 강진 제자들의 면면과 미공개 유물을 최초로 전시하는 자리다.

다산의 저술은 주로 강진 유배기에 이뤄졌다. 현전하는 ‘여유당전서’ 503권 182책은 한 인간이 평생 베껴쓰기만 하기에도 불가능한 분량이다.

이처럼 인간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저작의 탄생은 유배지 제자들과 함께 한 작업의 결실이었다. ‘복숭아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뚫리는 고통’을 이긴 다산의 학문

 

 

적 열정과 헌신적인 제자들과의 공동 집체 저술은 한자문화권 최대의 저술을 이뤄냈다.

또 ‘여유당전서’는 치열한 희망주의의 산물이었다. 개혁의 이상과 철저히 괴리된 절망의 현실을 딛고 선 다산은 강진의 학동들을 당당한 학자로 길러냈으며, 제자들은 스승의 학문 정신을 몸과 마음에 체득했고 이를 실천했다.

다산의 강진 제자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양반 자제와 함께 읍중 제자들(이속층) 그리고 일군의 승려들도 있다. 조선에서 사제 관계의 전통으로 보아도 매우 특기하다. 다산은 개인적 처지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사대부 뿐 아니라 신분이 낮은 여항인과 승려와 교유하며 사제의 연을 맺었다.

다산이라는 큰 나무 아래 제자들은 각자의 자질과 개성에 따라 천문학·농학·지리학·역사·기술·외교·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을 남겼다.

 

 

 

스승이 유배에서 풀려 집으로 돌아갈 때 제자들은 ‘다신계’를 결성했다.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모임을 열어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새겼다.

또 다산이 돌아간 지 10년 후 강진의 황상은 스승의 기일을 맞아 여유당을 찾아왔다. 이 때 다산의 아들 정학연과 황상은 두 집안의 유대가 후손들에게도 길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황계(丁黃契)’를 맺었다.

이처럼 유배지의 제자들-다산학단은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쌓아 올렸다. 그리고 강진·해남 등 먼 바닷가의 고을에 ‘문명향’이란 명예를 안겼다.

전시는 크게 ▲스승의 저술을 도우며 자신의 학문분야를 개척하다 ▲학자가 지켜야할 덕목 ▲새로 발견된 다산학단의 문학 유산 ▲신분을 넘어 우의를 다진 ‘정황계첩’ ▲다산학단 인물들의 시회(詩會) 기록 ‘가련유사’로 구분된다.



스승의 저술을 도우며 자신의 학문분야를 개척하다

다산의 제자들은 책이 귀한 상황에서 고전과 선배·동료의 좋은 글을 베끼고 옮겨 적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충실히 메모하고 기록해 총서를 엮어냈다. 또 제자들이 스승의 저술 작업을 충실히 도왔다. 다산의 대표저술로 알려진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편찬의 과정을 제자들은 총서에 기록했다.

▲평생에 걸쳐 초서작업을 한 황상의 ‘치원총서’= 황상은 ‘부지런히 하고 또 부지런히 하라’는 스승 다산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 책을 베껴 적는 초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초서해 쌓아둔 책이 많았는데, 그 높이가 자신의 키를 넘길 정도였다고 한다. 초서의 내용은 경세학에 관한 것도 있고, 문학에 관해 옮겨 적은 것도 있다. 매일 베끼고 옮겨 적는 것이 버릇이 된 황상에 대해 주위 사람들은 개미집 같다거나 부적같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흠흠신서’ 편찬 과정을 돕다, 황경의 ‘양포총서’= 현재 15책이 전하는 ‘양포총서’는 경세학, 문학, 역사 분야의 문적에서 주요 내용을 베끼거나 정리해 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흠흠신서’의 초고 일부가 기록돼 있는데, 여러 경전에서 관련 사항을 조사 발췌한 부분이다. 현재의 ‘흠흠신서’와 체제가 다르며 자료 수집의 초기 단계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다산 초당의 가르침, 학자가 지켜야할 덕목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제자들은 세상에 유행하는 음란하고 기괴한 책들을 읽지 않고, 자신의 덕을 기르고 수양서와 백성을 위하는 목민(牧民)에 관한 서적을 읽었다.

▲학자가 지켜야 할 덕목, ‘거가사본’= 다산 정약용이 잃어버렸다고 매우 안타까워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효도·공경·화목에 관한 조항, 밭 갈고 길쌈하며 가축 기르는 법, 뜻을 세워 학문하며 악을 제거하고 선으로 나아가는 것, 책을 소장하거나 초록(抄錄)하는 일, 책을 즐기고 아끼는 것, 선을 베풀고 분노를 자제하는 것, 곤궁에 대처하는 것, 사욕을 막는 것 등을 책으로 엮은 수양서다.

▲백성을 위해 목민을 관한 책을 읽으라, ‘작비암일찬’= 이 서첩은 명나라 정선(鄭瑄)이 지은 ‘작비암일찬’을 간추려 엮은 것이다. 다산이 목민서로 읽어야 할 책으로 지목한 것으로, 제자들에게 지금 세상에 횡횡하는 음란하거나 기괴한 책들을 읽지 말라고 했다.

그는 목민에 관한 서적을 읽어 자신의 덕을 기르고 백성을 위하는 참다운 삶을 살라고 가르쳤고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따르고자 노력했다.



새로 발견된 다산학단의 문학 유산

▲초의 선사 의순의 시집 ‘초의시고’= 조선 후기의 승려 의순(意恂, 1786~1866)의 시집이다. 자는 중부(中孚)이며, 호는 초의(草衣), 당호는 일지암(一枝庵)이다. 다산의 지도를 받아 유학 경전 연구에도 힘을 썼고, 다산으로부터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차(茶)에 대한 감흥을 표현한 시 등을 수록하고 있으며 후일 홍석주·정약용(丁若鏞)·김정희(金正喜) 등과도 교유했다.



신분을 넘어 우의를 다진 ‘정황계첩’

‘정황계첩’은 다산의 아들들인 정학연·정학유가 강진 제자 황상과 함께 두 집안이 대대로 우의를 지속하기를 다짐하며 계를 맺고 남긴 기록이다. 다산이 죽은 지 10년 후인 1845년 3월 스승의 기일(忌日)에 황상이 1천리 길을 걸어 상경했다. 이 때 정 씨와 황 씨 양가의 자자손손 우의를 이어가도록 약조하며 정황계(丁黃契)를 맺는다.

이번 특별전에는 2개의 계첩을 전시한다. 하나는 황씨 가문에서 소장해 보관하던 것으로, 황상의 이름이 연장자인 정학연의 이름보다 앞에 기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씨 가문에서 소장해 보관하던 것으로, 정학연의 이름이 앞에 나와 있다.



다산학단 여러 인물들의 시회(詩會) 기록, ‘가련유사’

윤종창, 윤종심, 체경, 초의, 윤종삼 등 다산학단의 구성원들이 중심이 돼 시회(詩會)를 열고 이를 묶어 엮은 시집이다.

이들은 모두 다산의 다신계와 전등계 제자들이다. 책의 겉표지 제목은 ‘가련유사’, 내지의 제목은 ‘아회록’으로 돼 있다. 1818년 겨울에 쓰인 윤종영의 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산이 초당을 떠나는 즈음에 쓴 것으로 보이며, 스승이 해배돼 초당을 떠난 후 유대를 지속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장선기자 kjs76@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