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무덤
/박정만
무덤이 무덤을 불러서
무덤끼리 도란도란 숨어 사는 곳,
기쁨은 다 남의 것이 되고
슬픔만이 나의 차지,
꽃송이는 다 남의 것이 되고
떨어진 꽃잎만이 나의 차지,
낙화 속에 숨어 사는
한 올의 향내만이 나의 차지,
너 있는 곳을 찾아 헤매어도
실實은 너는 없고,
입 맞추며 입 맞추며 숨쉬는 무덤.
- 박정만 시집 〈잠자는 돌/고려원〉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에 고초를 겪다가 간경변으로 사망했다. 이 세상 모든 슬픔은 나의 차지라고, 세상은 숨 쉬는 무덤이니 기쁨은 다 남에게 주고 떠나겠다며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향기 진동하는 떨어진 꽃잎들의 무덤은 하루살이의 삶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소중한 순간이라고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시의 행간에서 꽃향기가 묻어 나온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