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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수도원 ‘라 투레트’에서 신의 오묘함 만나다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프랑스 리옹<上>

 

 

유명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라 투레트 수도원’에 가기 위해 리옹에 도착
전세계 건축학도들이 순례하는 ‘건축의 성지’

몇 달 전 예약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도미니코 수도사들이 쓰던 방에 가방을 푸는 순간
‘왔어야 할 곳에 왔구나’ 안도와 평안 느껴

언덕 위 수도원에 가는 길 목가적 풍경 눈길
때마침 리옹 비엔날레 일환으로 방문객 북적
‘아니쉬 카푸어 전시회’ 개최 오묘한 우연 감탄


서강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이한숙 작가는 아티스트웨이 대표이자 한국코치협회 인증 창조성 전문코치(KPC)로 활동하고 있다.

 

‘인생을 어떻게 빚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아티스트인 그는 ‘여행’과 ‘글’로 자신과 사람들의 변화를 돕기

해외 감성여행(단체)을 기획하고 창조성 워크숍을 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아이 넷을 키우며 일까지 병행하는 워킹맘이지만,

 

1년에 반 이상은 여행을 다닐만큼 선천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이한숙 작가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한 달간 프랑스 라투레트-피르미니-리옹-안시를 거쳐 스위스 몽트뢰-브베-체르마트(마테호른봉)-루체른-리기산-바젤-베른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경험들을 몇 편의 글로 담아냈다.

이에 본지는 6개월간 격주에 걸쳐 그가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과 느낌을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이 곳에 오기 전까지 리옹(Lyon)은 나에게 그저 건조하게 느껴지는, 프랑스의 한 도시일 뿐이었다. 리옹을 여행 일정에 포함한 것은 순전히 근교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라 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엘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리옹에 도착한 순간 나는 이 도시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에 대해 리옹에게 미안해해야 했다. 리옹은 전통과 현대가, 건축·문화·예술의 역사가 공존하며 마리아주를 펼치는 매력적인 도시였다.(이 이야기는 후속편에 이어질 것이다)

덕분에 라 투레트에서 돌아와 예정에 없던 리옹에서 이틀을 묵었다. 그러나 떠날 때는 마음껏 그 매력에 몸을 담그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열흘 동안 남프랑스 예술기행을 함께 한 일행들과 니스(Nice)에서 헤어져 마르세유를 거쳐 리옹, 그리고 라 투레트까지 오는 여정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러나 그 만큼 보상은 컸다. 수도원 사무실에 연락해 미리 받은 안내지에는 그곳이 작은 마을 아르브렐( L‘arbresle)에서도 한참 떨어진 오지(?)임을 말해줬다. 작은 배낭에 이틀 묵을 짐만 간소하게 싼 다음 캐리어는 역(Gare de Lyon Park Dieu) 라커에 맡겼다.

 

 


로안(Roanne, 호앙이라고 발음한다)행 기차는 아르브렐역에 도착할 때까지 로컬의 풍경 속으로 바짝 붙어 달렸다. 양 옆으로 펼쳐지는 숲들은 팔을 뻗으면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기차에 탄 사람들도 지방색이 물씬 났다. 기차의 느긋한 속도는 풍경과 어우러져 여행 기분을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비껴가기 시작한 오후 햇살에 노출된 라브렐 역은 작고 소박했다. 철길을 건너 안내대로 택시를 타려고 거리에 섰으나 한참을 지나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운동삼아 걸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수도원쪽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만만치 않은 오르막길이었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길래 손을 들어 세웠다. 부부가 타고 있었다. “라뚜렛에 가는데 어떻게 가야하냐”고 물으니 가는 방향이니 동승을 권했다.

라 투레트 수도원은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했다.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순례하는 ‘건축의 성지’로 떠오른지 오래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평소 건축에 관심이 많은 나는 유명한 일본의 아도 타다오를 건축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과 승효상씨가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위대한 작품으로 꼽는 라 투레트 수도원이 무척 궁금했다. 2013년에 번역 출간된 대만 사진작가 니콜라스 판의 ‘언덕 위의 수도원’은 그런 내 궁금증을 더 부채질했다.

일행들이 귀국하고 나자 3주의 시간이 내게 오롯이 주어졌다. 스위스 일주 여행을 위해 빼놓은 시간이다. 스위스로 넘어가기 전에 수도원에 들러 이틀을 숙박하기로 했다. 수고한 자신에게 주는 특별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몇 달 전부터 수도원 호텔을 예약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번성하던 때에 도미니코 수도사들이 쓰던 방이다. 사실 그래서 좋았다.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고독하게 청빈과 정결을 지키며 살아갔을 수도사들이 묵었던 방, 좁고 검소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으로 가득 찬 방에서 나 같은 이방인이 묵어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특혜처럼 여겨졌다.

 

여러 개월 그곳에 묵으며 찍은 사진과, 그 공간에서 스스로 생애 최대의 슬럼프를 벗어난 니콜라스 판의 영적 여정이 아름답게 그려진 위의 책을 통해 나는 수도원 곳곳에 대해 이미 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곳에 도착하여 방에 가방을 푸는 순간, 왔어야 할 곳에 왔구나, 하는 안도와 평안이 내 몸을 감쌌다.

나는 그곳에 친구와 함께 갔다. 그녀는 여행 중에 들른 엑 상 프로방스 아침시장에서 예쁜 꽃 화분을 하나 샀다. 자신에게 눈을 맞추는 연분홍 꽃을 외면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짐 때문에 번거로울테지만 그녀는 언제나 화분을 품에 안고 다니며 애지중지했다. 그 꽃은 수도원에도 따라와서 그녀 방 책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 꽃 역시 있어야 할 곳에 온 것처럼 그곳에 잘 어울렸다.

역에서 수도원에 이르는 길은 아르브렐의 속살이나 다름없었다. 언덕 위의 동네 몇 개를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동안 시야는 넓어지고 초록의 초원과 그 위에서 풀을 뜯는 소와 양들은 한가로운 목가의 풍경을 연출했다. 수도원 입구에는 양 옆으로 웅장한 상수리나무 가로수들이 멋진 단풍 캐노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입구부터 빽빽히 주차된 차들과 많은 방문객들로 인해 수도원은 번잡했다. 의아했다. 알고보니 리옹 비엔날레의 일환으로 그 유명한 아니쉬 카푸어(Anisch Kapoor) 전시를 이곳에 유치했기 때문이란다. 삼성 리움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 반가웠는데, 이곳에서 그를 다시 만나다니. 그의 작품이 이곳처럼 잘 어울릴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둘의 완벽한 조합에 보지 않고서도 가슴이 떨렸다.

여행할 때 마다 감탄하는 것은 계획하지 않은 것까지 계획하시는 신의 오묘함에 대해서다. 계획이 없을수록 오묘한 우연에 감탄하는 순간이 잦은데, 이번 여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 투레트에 아니쉬 카푸어를 유치할 멋진 생각을 한 신부님은 제2의 쿠튀리에라고 할 수 있는 마크(Marc) 신부님이다. 그는 이곳에서 진행되는 모든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 불편한 곳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비엔날레 관람객이 두 주 만에 2천명을 넘어섰다니, 프랑스의 예술저력을 알만했다.

 


어둠이 깃들기 전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수도원은 썰물이 쓸고 간 바다처럼 쓸쓸했다. 그제서야 탐험심이 발동을 했다. 수도원 설계도를 들고 탐험에 나섰다. 방에서 나와 멀리 가지 않아서 오벨리스크처럼 지붕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공간 옆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악기 편성의 챔발로 트리오의 연주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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