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9 (월)

  • 구름많음동두천 26.2℃
  • 구름많음강릉 31.2℃
  • 서울 27.4℃
  • 흐림대전 27.5℃
  • 맑음대구 28.7℃
  • 맑음울산 29.3℃
  • 구름많음광주 27.6℃
  • 구름조금부산 28.4℃
  • 구름많음고창 28.0℃
  • 맑음제주 28.9℃
  • 흐림강화 26.4℃
  • 맑음보은 26.6℃
  • 구름조금금산 27.7℃
  • 맑음강진군 28.3℃
  • 맑음경주시 30.4℃
  • 맑음거제 27.6℃
기상청 제공

산티아고 순례길서 만난 보석같은 산동네 ‘자유 향한 여정’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산티아고 오 세브레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주요 거점도시인 레온
모닝커피 마시러 나왔다가 순례자들과 수다
그 자리에서 오 세브레이로의 여정 결정

순례자 전용숙소 알베르게에 가려고 탄 택시
호스탈로 안내해 준 택시기사 덕분에
전망 좋은 방에 머무는 행운 “아, 좋다”

다음날 아침 산타마리아 교회서 마음의 경배
신부님이 전해준 엽서에 적힌 순례자의 시
‘자신에 이르는 자유’ 내 인생의 화두 발견


사람들이 대성당의 찬란한 색유리를 보기 위해 오는 레온,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주요 거점 도시다. 그곳에서는 부르고스 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이 눈에 띄었다. 대성당 앞 카페 알바니에서 카페 솔로를 시켜 놓고 광장에 모여드는 여행자들의 아침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옆 테이블이 소란스러웠다. 6명이나 되는 페레그리노(순례자)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대화 내용이 아니라면 차림새로는 그들이 순례자라는 걸 쉽게 알 수 없었다. 순례자라기엔 너무나 말쑥한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반갑게 인사를 텄다. 아니나 다를까, 배낭을 벗어 던지고 그들은 오랜만에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도시의 공기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아침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가 길 위에서 안면을 튼 인연으로 그렇게 반갑게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카페 알바니는 암암리에 알려진 페레그리노들의 아지트였던 셈이다.

그들 중의 한 미국 여자는 카미노를 두 번 째 걷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 세브레이로에도 가보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오 세브레이로에서 묵었었나요? 어땠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그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눈을 감아가며 열심히 설명을 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오 세브레이로의 여정을 결정했다.
 

 

 

 


오 세브레이로에 가기 위해서는 하루 두 대 밖에 다니지 않는 일반 버스를 잡아타고 피에드라피타(Fiedrafita)라는 곳으로 가야했다. 스페인에 온 이래 처음으로 터널을 지났다. 차창 밖 풍경을 보니 말로만 듣던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아름다운 산악지대를 통과한다는 실감이 났다. 저녁 7시반이 넘어 피에드라피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공기의 감촉이 달랐다. 그곳에서 오 세브레이로까지는 4.8킬로, 순례자 전용숙소인 알베르게가 8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니 서둘러 택시를 타도 너무 아슬한 시간이었다. 피에드라피타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 그곳에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호기롭게 외쳤다. “못 먹어도 고(go), 갑시다!”

마침 길 건너편에 택시 한 대가 보였다. 손을 흔드니 덩치 크고 인상 좋은 남자가 건너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행히 순례자들을 산 정상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까지 태워다주는 일이 그의 주업 중의 하나였다. 하나뿐인 알베르게가 문을 닫을까 염려하는 우리에게 그가 말했다.

“알베르게 말고도 호스탈이 몇 개 있어요. 제가 아는 호스탈로 데려다 줄게요. 그곳에 방이 있어요.”

택시에 오르자 바로 언덕길 쪽으로난 커브길로 접어드는 루비코, 루비코와 몇마디의 말도 나누기 전에 우리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기막힌 풍광이 펼쳐졌다. 그 사이 살짝 넘어다본 택시의 미터기, 루비코는 미터기를 꺾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바가지를 씌우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잠시, 우리는 창문을 내리고 쌉쌀한 공기를 폐에 가득 채우며 “루비코, 룩 히얼(Look here~), 오 마이 갓”을 연발했다. 루비코는 잘못도 없이 우리의 감동 속으로 매번 끌려들어왔다. 그는 우리 하는 꼴이 싫지 않은지 미소를 지었다. 지난 여정동안 장구한 역사와 문명 도시들을 거쳐오느라 지친 우리 눈이 드디어 볼 것을 보며 호강을 하고 있었다. 태고의 자연이 뿜어내는 신령한 기운은 우리에게 해방의 출구였고, 우리 영혼은 기뻐 날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도착한 숙소는 스위스 샬레처럼 산장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다. 일부러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는 최고의 전망을 가진 방이었다. 흰 레이스 커튼으로 멋을 낸 접이식 발코니 문을 열고 나가니 사방으로 뻗어 내린 산 능선들과 그 사이로 멋스럽게 난 LU-633 도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리고 거침없이 달려드는 자연을 향해 눈을 감았다. 아, 좋다. 아무런 준비도 예약도 없이 똥 배짱으로 올라왔는데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는 건가. 순례자 마을이 아니라면 어찌 이 가격에 이런 방에 묵을 수 있을까. 더구나 이곳은 오래된 교회 하나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만 있을 뿐, 그야말로 적막과 고요가 천지를 가득 채운 천혜의 마을이 아닌가.

쌀쌀한 속을 달래려고 호텔 식당 겸 바(bar)에 내려가 이 지방 전통 수프 칼도 갈레고(Caldo Gallego)를 시켰다. 감자와 양배추를 넣고 푹푹 끓인, 그야말로 모양도 맛도 소박한 갈리시아 지방의 수프다. 식당에는 얼굴이 검어진 순례자들이 많았다. 그들이 순례의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많은 이가 순례자 전용 메뉴를 시켜 먹고 있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있다는 실감이 제대로 났다.

친구는 가방 던져 놓고 어둠이 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내달려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서 그녀는 돌아왔다. 우리는 옆 호스탈 바로 한 잔 하러 갔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산 비탈에 심은 포도나무들을 많이 봤다. 수확이 끝난 포도밭은 누렇게 단풍이 들고 있었다. 길 위에서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은 낯설고도 황홀한 경험이었다. 친구는 로컬 와인 한 병을 샀다. 그 지방의 익은 가을 냄새가 났고, 취기가 빨리 올랐다. 먹던 와인병을 들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발코니 창을 활짝 열고 다시 술판을 깔았다. 레온 마요르 광장 수요시장에서 사온 갖가지 과일과 초리조, 치즈까지 펼치니 천국의 바(bar)가 따로 없었다. 불을 껐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별이 쏟아졌다. 고단했던 하루를 쏟아지는 별과 함께 마무리했다.

다음 날 아침, 유서깊은 그곳의 산타 마리아 교회에서 우리는 각자 마음의 경배를 올렸다. 교회 입구 한 구석에 순례자의 시가 적혀 있었다. 앉아서 노트에 그 시를 옮겨 적고 있는데 그곳 신부님이 다가와 엽서 한 장을 잔잔한 미소와 함께 전해줬다. 그 시 전문이 적힌 엽서였다. ‘자신에 이르는 자유’,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의 화두였다. 이 고장의 가장 흔한 재질인 돌로 만들어진 질박하고 작은 교회, 그러나 그 어떤 대성당에서보다 더 경건하고 성스러운 기도를 바쳤던 곳, 그곳에서 이 문구를 발견하게 돼 더 기뻤다.
 

 

 

 


 

아래는 그 시의 한 부분이다.

Although I may have traveled all the roads,

crossed mountains and valleys from East to West,

if I have not discovered the freedom to be myself,

I have arrived nowhere.

(내가 동과 서에 이르는 모든 길을 걷고,

산과 골짜기를 건넌다해도

내 자신에 이르는 ‘자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무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정리=민경화기자 mkh@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