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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파’ 야고보, 800㎞ 고난의 여정… 그 길에서 나를 찾다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칠레의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고
스페인 산티아고엔 은총이 내린다’

 

 

야고보 이후 신심 깊은 사람들 순례
이젠 삶의 해답 찾는 순례길의 대명사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서 스탬프 찍은 후
산티아고상 포옹… 미사 참여로 마무리
긴 여정 함께한 신의 은총에 감사함 느껴

일부는 대서양 끝 ‘피네스테레’까지 도달
자신의 신발 태우고 인생의 새출발 다짐도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순례자의 길에 대해 쓴 책을 읽은 건 2007년, 아무도 모르게 내 안에 이 길에 대한 동경이 스며들었다. 특히나 이 길을 걷고 나면 삶을 변화시킬 힘과 세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갈 힘을 얻게 된다는 말에 끌렸다. 마음에 한 번 새겨두면 잊고 지내도 슬그머니 기회가 찾아와주는 기특한 것들이 있다. 이 길이 내게는 그랬다. 2014년 10월 손수 기획한 스페인 여행 12일을 마치고 나는 귀국길에 오른 일행에게서 떨어져 홀로 남았다. 북부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이었고, 여행 중에 순례자의 길을 경험해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순례자들에 의해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사람이 지나가면 그 곳에는 길이 난다. 순례자의 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길은 그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성야고보의 길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가 복음전파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믿음으로 걸은 길이다. 프랑스 피레네 산맥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기까지 약 800㎞에 달한다. 가진 것을 최소로 줄여 오직 견딜 만큼만 등에 지고 매일 20∼30㎞씩을 걸어도 최소 한 달이 걸리는 쉽지 않은 길이다. 야고보 이래 신심깊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었고, 이제는 삶의 질문에 용기있게 마주하고픈 사람들이 달려가 묵묵히 걷는 전세계 순례길의 대명사가 됐다.

김남희씨가 그곳을 걸었던 2005년 한 해 동안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은 2만1천544명이고 그 중 한국인은 단 3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거의 3분의 1이 한국사람들이었다. 그곳이 스페인인지 한국인지 사람만 보고는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 한국에서는 한 때 유행하는 패션같은 것인가요”라고 호주에서 왔다는 그레이스는 내게 물었다.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단행하는 순례길 걷기가 이미 세상 풍조에 휩쓸리고 있다는 증명 같아 씁쓸하기도 했지만 한편 다른 풍조가 아니라 걷기 풍조에 휩쓸리는 것은 절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직하게 몸을 써서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오래 몰입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경험’이다. 동기와 상관없이 걷는 동안 우리 안에 일어날 화학변화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여행은 그 자체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어떻게 마주하고 다루어야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살아있는 학교다.

야곱의 시신을 뉘인 배가 저홀로 떠내려가 이곳에 닿았다는 전설에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는 야고보 성인을 기리는 대성당이 있다. 산티아고에 도착해 증명서에 스탬프를 찍은 순례자들이 마지막으로 행하는 일은 천 년 전부터 이어져온 전통대로 성당의 제단 뒤로 가서 산티아고상을 끌어안은 다음 대성당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정을 끝낸 순례자들의 이름이 불려지는 순서가 미사 중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순례자들은 힘든 여정을 무사히 마친 자신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고 더불어 그 여정을 함께 한 신의 은총에 무한한 감사를 올리게 된다. ‘칠레에 있는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리고 스페인의 산티아고에는 은총이 내린다’는 말이 있듯이, 그 순간 그들이 경험하는 은총은 참으로 특별한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여정의 종지부를 찍지 않고 조금 더 걷는 사람들이 있다. 대서양 끝에 붙어있어 진짜 세상의 끝, 피네스테레(Finesterre)까지 가는 사람들이다. 산티아고에서 90㎞ 떨어진 그곳까지 걸어간 이들은 신고 온 신발을 태우고 인생의 새 출발을 다짐한다.

나는 여건상 직접 발로 걷지는 못했지만 순례길에 위치한 대표적인 도시들을 거치며 산티아고에 입성했다. 그럼에도 산티아고 광장에 도착한 날 저녁의 감격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소수의 사람들이 여정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찾아가는 피네스테레가 궁금해 나 역시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물론 도보가 아닌, 현지 여행사의 하루 투어를 이용하여 다녀오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재미있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여행사 앞 대로에서 출발한다는 벤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갔지만 차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행사로 직접 찾아가서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차는 예정대로 출발했고, 투어에 조인하지 못한 건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내 책임이라고 못을 박았다. 더구나 그날 투어는 오로지 그것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내일 다시 오면 투어에 조인시켜주겠다고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고 길을 찾으려는 노력 덕분에 여차저차해서 결국 그 여행사의 사장님(호세)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타고 투어차량을 뒤쫓게 됐다. 이런 행운 덕분에 오늘 하루 여행이 더 다채롭고 재미있게 됐다. 산티아고 외곽은 도시와는 다른 풍경과 분위기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더구나 구불거리는 시골길을 정말 열심히 달려주는 호세 덕분에 스릴감까지 넘치는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못되게 달린 후에 앞서 출발한 차량과 합류하게 됐다. 그곳은 옛 성곽과 다리가 잘 보존된 마을이었다. 미국과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왔다는 세 커플과, 노처녀 임마누엘을 만났고 차를 운전하는 동시에 가이드까지 1인 2역을 하는 씩씩한 카롤과도 인사를 나눴다. 투어는 목적지인 피네스테레를 향해 가는 동안 죽음의 해변이라 불리는 전형적인 리아스식의 모르테 해안을 따라 다양한 마을과 여행지를 돌아볼 수 있게 잘 조직돼 있었다.
 

 

 


우리를 태운 차는 에자로(Ezaro)폭포를 지나 아담하고 예쁜 항구마을 무로스(Muros)에 닿았다. 항구를 마주하고 서 있는 아름다운 식당에서 해물파스타를 먹고 나오다 독일인 여행자 토마스를 만났다. 그는 영락없는 방랑자 행색이었다. 손에는 캉통과 줄로 엮어 만든 조악한 현악기가 들려 있었는데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내 앞에서 솜씨 좋게 악기를 연주해줬다. 그 악기가 그에게는 밥벌이 수단이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작은 동전에 기대 그는 16년째 세계 곳곳을 방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방랑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은 이제 적응할 수 없을 정도가 돼버려서 정착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세상엔 정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고 여행자 중에서도 그렇다는 걸 새삼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피네스테레에 입성했다. 바다를 향해 있는 모든 암벽산 곳곳에는 시꺼멓게 그을린 바위들이 많았다. 어떤 바위 위에는 진짜 신발처럼 보이는 조각이 있었다. 그 근처의 바위에서 몇몇 순례자들이 신발을 태우고 있었다. 신발을 태우고 있지만 그들이 정작 태우고 있는 것은 그들 안의 온갖 욕심과 애증, 불신과 오해, 불안과 염려, 오만과 거짓들이리라. 그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인생이라는 숙제 앞에서 신의 은총을 간절히 구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빌고 또 비는 것이리라.

 

 

 

이제 그들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끝이 났다. 나의 카미노도 그렇다. 하나가 끝을 맺는 곳에는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번 끝에 도달하고 또 길을 떠나는 영원한 순례자다. 순례길에서 목이 너무 말라 그 갈증을 해결하려고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또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정말 중요한 건 이곳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남겨두고 온 그곳에 있다. 그것을 알려주려고 이 길을 걸은 코엘료도 ‘연금술사’를 쓰지 않았나. 자신 안에 이미 있는 보물을 알아보기 위해 그토록 멀리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주인공 산티아고가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깨닫기 위해 그런 순례가 꼭 필요한가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신이 우리 인생을 그렇게 디자인해놓으셨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순례길을 걷고 싶은 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걸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건 해야한다. 간절한 욕망은 신이 우리를 부르는 통로다.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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