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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실화소설 인동초(忍冬草)

 

 

 

인동초(忍冬草)는 혹한(酷寒)을 견뎌낸 풀을 말한다. 혹한이라 하면 눈, 얼음, 그리고 매서운 칼바람을 지칭한다. 언제부터인가 인동초는 김대중을 상징하고 있다. 그만치 김대중의 삶은 눈, 얼음, 또한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영위되어왔다. 그것은 유신(維新)시대의 사형선고, 가족들에게 가해진 모진 형벌, 그리고 일본에서의 납치로 배 밑창에 깔려 전신에 붕대를 감고 몸에 무거운 쇳덩이를 달아매는 마지막 순간을 겪는 일. 금세 그런 상태로 바다에 던져지려는 순간 구조되는 운명은 가히 혹한으로 비유돼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상의 사건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에 대해 아는 일도 많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도 많다. 그것을 다룬 것이 이 실화소설이다. 두 가지만 담아보자. 전투기가 폭격을 하고 날아가는 순간에 김대중은 처남에게 손짓을 하며 다리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 위에 있는 피난민들은 전투기가 쏟아낸 폭탄 소리에 놀라서 다리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김대중이 뛰기 시작하니 몇몇이 같이 따라 뛰었다. 폭격을 하고 날아간 전투기가 선회하면서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김대중은 온 힘을 다해서 다리 위를 달렸다. 햇볕을 가려주는, 얻어 쓴 밀짚모자가 바람에 날려가자 김대중은 다시 돌아 뛰어서 밀짚모자를 주워 쓰고 달렸다. 다리를 거의 건널 때쯤이었다.

전투기는 방금 전까지 김대중과 처남이 웅크리고 있던 그 장소에 폭탄을 떨어트렸다. 굉음과 함께 진동이 울리면서 흙먼지가 하늘로 올랐다. 그리고 전투기는 임무를 완수했는지 멀리 하늘로 다시 날아갔다.

김대중은 처남을 돌아보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남도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방금 전까지 서 있었던 그 자리에 폭탄이 떨어지다니,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죽었을 텐데, 삶과 죽음이 불과 몇 걸음 차이로구나”

잠시 생각하는 듯했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가 없었다.

좀 긴 인용문이지만, 그가 얼마나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살아남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이러한 위기를 겪는 순간은 그의 일생을 살펴보다 보면 많이 목도된다. 단순한 삶이 아님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그의 삶 속에서 뼈저린 아픔과 눈물의 장면을 또한 보게 된다. 그것은 첫 딸의 죽음과 동생 대의의 죽음이다. 거기다 가족의 생존을 맡은 첫 부인 차용애의 죽음은 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가족의 죽음은 그 어떤 슬픔과도 견줄 수가 없는 일이다.

삶이 어려워지자 정치를 떠나서 다시 사업을 하려 했으나,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아내인 차용애가 세상을 떠났다.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약을 먹었는데 혼수상태가 된 것이다. 김대중은 의사를 부르러 뛰어나갔다. 그리고 의사와 함께 돌아왔는데 아내는 이미 숨져 있었던 것이다. 두 아들 홍일과 홍업이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미용실을 하며 생계를 도왔던 그녀, 김대중이 아니면 죽겠다던 그녀, 전쟁 중에 방공호에서 아이를 낳았던 그녀, 가족이 어려울 때마다 대장부의 길을 가라고 용기를 주었던 그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눈물 없이는 읽어낼 수 없는 장면이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이처럼 뼈저리게 아픈 슬픔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을 일반인은 잘 모르고 있다. 이러한 아픔이 어쩌면 밑거름이 되어 그를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끝없는 출마와 낙선은 그의 일생을 지배한 셈이다.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그는 낙망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끝없는 도전이었다. 그 결과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어 그는 많은 일을 했다. 많은 국민을 곤경에 처하게 하였고 죽음으로 몰아갔던 IMF사태를 조기에 수습했다. 결국 나라와 국민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업적을 남겼다. 2009년 8월18일 인동초 김대중은 세상을 떠났다. 인동초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필자는 시나리오를 탈고하면서 감회가 새롭다. 모진 겨울을 견디어낸 인동초, 그는 영원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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