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안도현
봄비가 초록의 허리를 몰래 만지다가
그만 찔레 가시에 찔렸다
봄비는 하얗게 질렸다 찔레꽃이 피었다
자책, 자책하며 봄비는
무려 오백 리를 걸어갔다
- 안도현 ‘북항’ / 문학동네
누군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란?” 머뭇거림도 없이 ‘가시다’라고 대답했다. “왜?”, “어찌하여?”, “무엇 때문에?”라는 되물음은 없었으나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벼리듯 각자가 가시를 품고 사는 게 사람 아니겠냐는 생각이다. 가시가 가시를 품으면 서로에게 아픔이듯, 상처 또한 각자가 품고 있는 가시만큼 씩의 흔적으로 남을 일이다. 찔릴 줄 알면서도 다시 찾아올 ‘봄비’가 기다려지는 겨울의 끝이다./권오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