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장례
/박홍점
아끼던 붉은 색을 입었다
마주하는 얼굴이 환하다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당신
현을 고르던 집중을 멈추고
자판을 두드리던 손끝을 접어두고
모두들 왔다
더듬어 보면 벽난로 속 타오르는 불길처럼
뜨겁지 않은 나무는 없다
- 시집 ‘피스타치오의 표정’
사람과 자연은 서로 모방하며 사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연하게 반짝이며 귀엽게, 젊어서는 단 내 나도록 힘껏 무성하게, 가을 단풍을 보고 뜨겁게 불타오르지 못한 생애를 반성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우리들 각자의 생은 뜨거웠던 것, 어디 큰 나무 뿐이랴 작은 나무도 땅속에서 끊임없이 물길을 찾아 뿌리를 벋는다. 뒷모습이 초라하다고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장례식장 흰 국화꽃에 둘러쌓인 당신, 살아 어느 순간보다 환히 빛난다. 단풍은 제몸을 태워 행락객들을 불러들이고 인간은 임종으로 전 생애의 인연을 불러들인다./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