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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단풍, 그 색(色)의 단상(斷想)

 

 

 

가을과 겨울의 경계인 이 계절! 아침공원의 산책길은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단풍들로 가히 장관을 이룬다. 다양한 수종들이 빚어낸 다채로운 풍광은 빛과 어우러진 색의 하모니가 다름 아니다. 도심 속 그것은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입동(立冬)이라는 절기를 무색케 한다. 시간은 게으른 몸놀림으로 색채를 빌어 회색도시의 초목들을 다음 계절로 재촉한다. 빛의 굴절되어 망막에 전달되는 색상은 현란하다.

얼마 전 단풍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영서지방의 한 곳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미 단풍이 지나간 후라 올해는 마음 접었으나 도시 안에서 만난 이 계절의 단풍은 그래서 더욱 고맙고 감사하다. 발부리에 밟히는 낙엽의 촉감은 계절의 선물이 되고, 산책하는 내내 코끝으로 전달되는 알싸한 찬 공기의 자극은 수 십 년을 한 몸으로 살아온 알러지를 유발하지만, 그것이 다양한 색으로 환치(換置)되는 순간 몸은 자율신경계의 마비를 경험한다. 빨강과 초록, 파랑과 노란색의 대조(對照)가 더해져 현실 혹은 이상계를 오가며 자연의 정취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계절이 색으로 대변되어지는 지금 이순간은 인생의 덤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즐기면 그만이다.

우리나라 단풍이 유럽 국가들의 단풍보다 유독 붉게 물든다고 한다. 해충의 접근을 막기 위한 붉은색의 안토시아닌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다가올 혹한과 그 위기에 대처하고 살아남기 위한 나무들의 방어기제의 발동인 것이다. 유럽의 경우 빙하기를 거치면서 해충들이 사라지자 강력한 천적때문에 필요했던 안토시아닌은 더 이상 만들어질 필요성이 없어졌고, 붉어질 필요가 없는 생존을 위한 유전요인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의 섭리다.

매년 가을이 오면 물드는 단풍을 보며 우리는 각기 다른 단상에 젖는다. 색을 통해 걸어온 시간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꽃분홍과 연초록인 봄은 초년시절을, 푸른 녹청(綠靑)은 성하(盛夏)의 청년을, 붉은 빨강은 만추(晩秋)의 무르익은 중년, 엄동설한(嚴冬雪寒)의 순백(純白)을 통해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무채색의 노년이 그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이라는 시간은 각기주어지고 주어진 시간은 개개의 관심과 열정, 노력여하에 따라 그에 맞게 서로 달리 채색되어진다. 찰나(刹那)와 순간(瞬間)의 궤적이 모여 시간을 이루고 그 오랜 시간의 쌓여짐이 편안하고 무한히 긴 억겁(億劫)을 만들 듯이 색은 그 시간이라는 무늬를 빌어 자신의 옷을 입힌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짧은 하루를 벗 삼아 창문을 두드린다. 매운바람이 불기 시작하지만 거리엔 아직 낙엽이 쌓여있고 나뭇가지에 남은 잎새들은 마지막 빛을 발산하고 있다. 그렇게 가을빛은 내 뜰 안에 남아있다. 한해살이가 거짓 없이 색으로 나타나는 이 계절! 나는 어떤 색으로 걸어왔는지, 그 시간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했는지, 그럼에도 그 시간 안에서 나만의 색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슨 색이며, 보낸 시간은 어떠했나?

선승 의상은 말한다. ‘길은 본래부터 주인이 따로 없다’고, 그러니 내 인생의 색은 내가 살아온 대로 나타나는 것이지 누가 살아준 흔적이 아니다. 때론 삶이 무겁고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단풍들이 저마다의 색을 만들어가듯이 나 역시 이 흐르는 시간 안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거듭 묻고 싶다. 어쭙잖은 위로나 공허한 격려로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이 물음의 끝은 완료형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에서 위안을 삼는다. 고운 빛의 단풍도 내일의 거름이 되듯이 인간 또한 아름다운 소멸을 위해 오늘을 사는 것은 아닐까? 오고가는 계절의 경계에서 인생의 색(色)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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