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9 (월)

  • 맑음동두천 17.5℃
  • 맑음강릉 22.9℃
  • 맑음서울 16.4℃
  • 맑음대전 20.3℃
  • 맑음대구 21.8℃
  • 맑음울산 22.1℃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8.4℃
  • 맑음고창 15.9℃
  • 맑음제주 15.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9.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3℃
  • 맑음경주시 22.0℃
  • 맑음거제 17.2℃
기상청 제공

“만세 부른 것 후회 없어요”…독립운동 이끈 수원의 기생 ‘향화’

 

오는 3월 1일 삼일절을 앞두고 관객들을 찾은 ‘향화’는 기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대한독립을 위해 앞장 선 김향화이자 김순이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경기아트센터가 2021년 레퍼토리 시즌 첫 작품으로 창작가무극 ‘향화’를 선보였다. 경기아트센터와 서울예술단이 공동제작한 ‘향화’는 1919년 수원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여성독립운동가 ‘김향화 열사’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20일 찾은 경기아트센터 대공연장에는 오랜만에 문화나들이에 나선 관객들의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제 사용, QR코드 명부 작성 후 들어선 공연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세 자리씩 띄어앉기로 운영됐다.

 

막이 오르고 매일신보 퇴역 기자는 오랜 수소문 끝에 마침내 김향화로 살아간 김순이를 찾아내 취재하며, 지난 세월을 거슬러 우리가 기억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밝혀낸다.

 

1897년 경성에서 태어나 수원으로 시집을 가게 된 김순이는 “엄마가 ‘순이야’하고 부르면, 동생이 ‘언니야’하고 부르면 행복했죠”라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하며 애절함을 더한다.

 

 

아버지 김인영이 사망하고, 열여덟 나이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김순이는 천변길을 걷다 수원 권번을 찾는다.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는 김순이의 애원에도 행수어른은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오고 나가고 싶다고 나갈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라며 단번에 거절한다. 

 

수원역 인근에서 우연히 일본 헌병대로부터 위험에 처한 나승현을 구해준 적 있던 김순이는 그와의 인연으로 권번에 들어가 모진 훈련 끝에 향화라는 이름으로 일패기생으로 거듭났다.

 

“낙화유수 바람 부니 꽃지고 눈물지고 청풍명월 지난 바람에 조각난 달. 꽃단장하고 웃음 파는 그곳은 북수리라. 고단을 풀고 하루를 눕히는 곳은 남수리라네”라고 노래하는 김향화의 청아한 음색과 단아한 자태는 무대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삼일학교 설립자 김세환의 민족의식에 감화된 그는 어찌 일본군을 위해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겠냐며 독립에 대한 희망을 꿈꾼다. 

 

극 중 독감이 유행처럼 번져 김향화는 그만 앓아눕고 말았다. 마치 그 모습이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의 삶과 닮아 있는 듯 보였다.

 

동료 기생의 “이번 헌병대 축하연에 네가 꼭 참석해야겠다. 수원 권번의 존폐가 달려 있어”라는 당부에도 김향화는 “그럴 순 없습니다. 어찌 침략자에게 술을 따를 수 있단 말입니까?”라며 뜻을 확고히 내비친다.

 

김향화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순이라는 본명으로 3·1 만세운동에 나서라는 동료의 모진 말에 그는 “나의 이름은 김향화다”라며 수원예기조합에 함께한 기생 33명의 이름을 노래했다. 뒷 배경에는 1918년에 편찬된 ‘조선미인보감’ 속 실제 기생들의 사진이 공개됐다.

 

자혜의원에서 위생검사를 받는 날을 3·1 만세운동을 펼치는 날로 정한 기생들은 김향화를 필두로 ‘만세’를 외쳤고, 강건한 의지가 깃든 그들의 외침에 무대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김향화 역으로 열연을 펼친 배우 송문선은 “실존인물이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많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역사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생이라는 신분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그는 경찰서 앞에서 동료들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장면을 연습할 때마다 감정이 북받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놨다. 일본인이 총을 겨누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강인하게 독립을 외친 김향화를 생각하면 울컥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라고 꼽았다.

 

극의 마지막, 기자(강상준)는 김순이로 태어나 기생 김향화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이후 김우순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왜 만세를 불렀어요? 후회한 적 없어요?”라고 묻는다. 이에 그녀는 “후회 없어요. 만세는 우리의 노래였고 춤이었다”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3·1절을 앞두고 국민으로서, 여성으로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만세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김향화와 그의 정신을 기억하길 바란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