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자 경제학자 콜망(Bruno Colmant)에 따르면, 벨기에 사회시스템은 사회보장제도의 개별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파경을 맞지 않는다면 아주 잘 작동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지 직전. 코로나 보건 위기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와 소득을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인들은 기본소득 카드를 꺼낼 찰나. 그간 벨기에 정부는 경기부진 때마다 여러 지원책을 내놓곤 했지만 기본소득 개념에는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절박한 상황.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지금이야말로 기본소득 개념을 부각시킬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2월 벨기에 중도우파 정당 MR(Mouvement réformateur: 개혁운동)은 기본소득 연구를 시작했다. 근시일내에 기본소득을 실시하려는 목표다. 이들이 생각하는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태어나면서부터 매월 수당을 지급받는 것이다. 브뤼셀 자유대학(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 법학과 뒤몽(Daniel Dumont) 교수는 “이 기본소득은 보편수당으로, 개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요약한다. 즉, 가족을 부양하든 아니든, 혼자 살든 누구랑 함께 살든, 가난하든 부자든, 차별 없이 대가나 노동 없이 지급된다.
부쉐(Georges-Louis Bouchez) MR 대표는 기본소득 만이 지금의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장치라고 평가하면서도 얼마를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말한다. 기본소득이 일시적 혹은 영구적 대책인가.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병행이 가능한가. 정확히 누구에게 줄 것인가. 국가 재정은 얼마가 들것인가 등의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둘러싸고 벨기에에는 두 개의 시나리오에 주목한다. 하나는 자유주의 모델로 모든 시민에게 매월 1000유로를 지급하되 기존의 복지수당은 전면 폐지한다. 다른 하나는 수당액을 500-600유로로 낮추고 기존의 사회보장 제도와 공존하게 한다. 부쉐 대표는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주고 현행의 편파적인 원조시스템을 철폐해야 한다고 보기에 전자를 지지한다. 반면에 경제학자이자 환경당 소속 의원인 드페이(Philippe Defeyt)는 시민의 보다 많은 안전과 자율을 위해 후자를 지지한다. 동일한 소득을 유지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고, 보다 쉽게 노동활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점에 따라 기본소득 시나리오는 첨예하게 달라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본소득을 아예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벨기에 FGTB(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 노동총연맹)다. FGTB의 보드송(Thierry Bodson) 대표는 “고용주는 피고용인이 기본소득으로 이미 몇 백 유로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임금 인상을 조금 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임금협상이 복잡해 질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처럼 다른 관점들을 수렴해 합의를 끌어내려면 기본소득 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기에는 기본소득 첫단추를 차근차근 끼우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기본소득 단어만 가득하지 기본소득 시나리오를 볼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떤 기본소득을 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진정 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싶다면 시나리오를 공개하고 기본소득 개념에 부합하는지 그것부터 따져나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