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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고성(孤聲)]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사법부가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아무리 사회가 썩어도 그래도 최후의 보루로서 사법부가 살아 있다면 그 사회의 건강성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비난하면서도 그래도 초대 사법부 수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의 행적을 기억하고 또 죽산 조봉암에게 양심적 판결을 내렸던 유병진 판사와 법복을 입은 성자였던 김홍섭 판사를 떠올리며 “그래도 그 시절 믿을 곳은 있었어”하는 위안을 삼는 것처럼 말이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존경받는 판사의 계보는 누가 잇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면 마지막으로 하소연할 곳이 사법부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사법부는 국민의 기대보다는 권력에 기대고 최근 들어서는 돈의 위력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소송한 지 6년 만에 열린 재판에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나왔다.

 

이미 두 차례나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피해를 인정받은 일제의 징용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했는데 판결 논리가 가관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국제사회는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 “강제동원의 불법성은 국내적 해석일뿐”,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한미동맹이 손상되어 안보가 위험해진다” 등 도무지 한국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주장들이다. 판사는 부끄러운지는 아는지 채 1분도 안 걸린 판결문 발표하고는 사법부의 높은 담장 안으로 숨어버렸다. 이제는 판사가 권력과 돈의 위력뿐 아니라 일본에 충성하고 의지하는 모습까지 봐야 하는가. 쾌재를 부르는 일본 극우파의 소식에 분통 터지는 것은 징용피해자들과 소식을 접한 국민이다.

 

원인은 친일의 논리가 아직 단죄와 응징되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단죄가 선언이라면 응징은 행동이다. 해방된 지 76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친일파가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것은 응징이라는 행동이 뒤따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교수, 언론인 그리고 판검사와 같은 지식인들은 화려한 언변과 논리로 과거를 합리화하기에 그 폐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크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단죄와 응징은 더욱 엄격해야 한다. 과거청산에 성공한 나라들은 지식인을 숙청함으로써 역사적 응징과 함께 다시는 과거가 미화되는 논리가 나올 수 없게 한다.

 

그러나 6년을 기다린 피해자들의 소송에 응답한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이런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응징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이다. 영국의 총리였던 글래드스턴은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라틴어 원문은 LEX DILATIONES ABHORRET(렉스 딜라티오네스 압호렛)으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률용어이다. 판결한 김 판사는 읽어나 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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