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0 (토)

  • 흐림동두천 26.0℃
  • 흐림강릉 30.8℃
  • 흐림서울 27.8℃
  • 대전 24.6℃
  • 천둥번개대구 24.5℃
  • 흐림울산 30.3℃
  • 흐림광주 25.6℃
  • 구름많음부산 29.1℃
  • 구름많음고창 27.8℃
  • 구름조금제주 34.6℃
  • 흐림강화 25.9℃
  • 흐림보은 24.1℃
  • 흐림금산 24.1℃
  • 구름많음강진군 30.0℃
  • 흐림경주시 25.1℃
  • 구름많음거제 29.7℃
기상청 제공

[하늘의 창] 프로 여행러를 위한 위로 한 스푼

 

코로나 사태는 우리네 일상 풍경을 여러 면에서 성형했다. 그중 하나가 여행. 해마다 연말연시나 설 또는 추석 연휴, 그리고 여름휴가철이 되면, 얼마나 많은 인파가 공항으로 몰렸던가? 하늘이 막히니 공항도 비었다. 대신에 ‘차박’(차 안에서 잠을 자는 캠핑)이나 ‘랜선 여행’(일명 ‘방구석 여행’) 같은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다.

 

아무리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항공여행의 추억에 몸살을 앓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기내식 도시락이 나왔다. 제주행, 뉴욕행, 프라하행 도시락을 사 먹으며 항공여행 ‘갬성’을 누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행에 ‘진심’인 사람들은 ‘무착륙 비행’을 즐기기도 한다. 목적지 없는 항공 비행 상품을 이용한 고객의 수가 지난 6개월 동안 1만 6000명에 달할 정도다.

 

이 대목에서 거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분석이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부자들은 결혼생활이 곤경에 빠지면 파리로 호화 여행을 떠나는 게 정석처럼 되어 있지만, 고대 이집트의 부자 남편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거다. 그들은 아내를 데리고 바빌론에 쇼핑하러 간다거나 페니키아에서 스키 휴가를 보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에 피라미드를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면 또 몰라도.

 

나처럼 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대는 이들이 들으면 뜨악하겠지만, 여행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낭만주의적 신화는 근대의 산물이라는 게 ‘팩트’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결핍 속에서 검박한 생활에 만족했다. 그러던 삶의 질서가 뒤바뀐 건 불과 2세기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은 재화든 용역이든 서비스든 더 많이 소비하는 사람이 ‘갑’으로 대접받는다. 소비가 미덕을 넘어 중독인 시대다.

 

문제는 이 뒤바뀐 질서에 적응하기에는 생태계의 준비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이다. 지구는 18세기까지 10억 명에 지나지 않던 인구가 이토록 단기간에 77억 명에 도달할 줄을 미처 몰랐다. 게다가 갑자기 불어난 인간이 먹고 싸고 돌아다니며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로 인해 지구의 기후가 이토록 급격히 변화할 줄은 정말 몰랐다. 지구에 ‘여섯 번째 대멸종’이 들이닥친다면, 그것은 인간 때문이라는 말에 무게가 실린다.

 

‘프로 여행러’들에게는 코로나 사태가 고문이겠지만, 인간이 집 안에 머물며 ‘거리두기’를 하는 시간 동안에 지구가 비로소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인공위성이 찍어 보낸 지구 사진들을 보면, 개발과 성장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지역마다 차분히 진정되는 모양새다.

 

지구는 46억 살이나 먹었지만, 인간은 고작 백 살도 채 못 살고 이 행성을 떠난다. 잠시 머물다 가는 주제에 엉망으로 해놓아서야 쓰겠는가? 어쩌면 후대는 ‘코로나 세대’에게 감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탄소 발자국을 덜 남긴 덕분에 숨을 쉴 수 있었다고. 그러니 너무 애석해하지 말자. 억지로 진 십자가가 은총의 통로일 수 있으니.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