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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25.인조임금 태실(胎室)이 있었던 대장동(大莊洞)

 

대장동은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낙생면 대장리 또는 태장리였다. 대장동은 태릉(胎陵)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인조(仁祖, 1623~1649 재위) 임금의 태실(胎室)이 이곳에 있어서 태장리(胎藏里)로 불렸다가 태장(太庄)으로 불리다가 다시 대장(大庄)으로 불렸다. 인조의 태실(胎室)이 있던 대장동은 옛날에는 ‘뫼두루안’이라고 불렸던 곳인데, 산이 마을을 둘러싸 안고 있는 모습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다가 뫼가 ‘무’로 변음 되었고 두루안이가 두루만으로 다시 ‘두만’이로 변음돼 ‘무두만’이라고 불리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무두만이와 장사(將士)가 났다는 장토리가 합쳐져서 대장동이 됐는데, 인조임금의 어태(御胎)가 묻혔다고 해 태장산(胎藏山) 또는 태봉(胎峰)으로 불린 산이 있다. 대장동의 개울물을 오목내라고 하는데, 연못처럼 오목하게 패여 있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때인가 전쟁 때에 장수를 잃은 용마(龍馬)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인조는 선조(宣祖) 28년(1595) 11월 7일 정원군 이부(元宗大王으로 추존)와 능성 구씨(仁獻王后로 추존)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옛 기록을 보면 인조는 출생할 때에 붉은 광채가 빛나고 이상한 향기가 진동했으며, 외모가 비범하고 오른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무수히 많았다. 성장하면서 더욱 총명하고 어질었으며, 효성이 있고 너그럽고 굳건하여 도량이 있었다. 선조는 한나라 고조(高祖)의 상이니 누설하지 마라고 하면서 아꼈다. 능양도정(綾陽都正)에 올랐다가 자급이 올라 능양군(綾陽君)에 봉(封)해졌으며, 광해(光海) 15년(1623) 3월 12일에 군사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하고 다음 날 즉위하였다.

 

 
능양군이 임금이 되는 데에는 이괄(李适)의 군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공적 평가는 1등 공신이 되지 못했고, 인조 즉위 다음 해에 반란을 일으킨다. 이괄의 난을 계기로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지만, 인조는 군사훈련을 못하게 함으로써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 인근에 역대 왕들의 태실이 있는데 인조의 태실이 옛 광주(廣州)에 있었음을 알리는 표석이 있어 태장산에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태장산에는 전의 이씨 선대 중에 세종(世宗) 때 부터 벼슬을 한 이예장(李禮長)의 묘가 있었는데 인조보다 150년 전에 살았던 명신(名臣)이고,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장토리(壯土里) 마을에는 광주 이씨, 우계 이씨, 경주 김씨, 밀양 박씨 등이 살아오던 마을이고, 무두만이마을은 병자호란 때 삼학사 중에 오달제(吳達濟)의 숙부인 오윤함이 묻힌 이후에 해주 오씨가 세거하여 살고 있는 마을이다.
 

대장동에는, 삿갓배미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 마을에 쉰 배미의 논이 있다는 말을 들은 다른 마을의 어떤 사람이 좁은 골짜기에 무슨 쉰 배미가 있겠냐면서 골짜기에 와서 논배미를 세다가 힘이 드는지라 삿갓을 벗어 놓고 다시 세어보아도 49배미밖에 안 돼 동네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투덜대며 삿갓을 들어 쓰려다 보니 삿갓 밑에 한 배미가 있어서 쉰 배미를 채웠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