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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드라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D.P.>에 이어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엔터테인먼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품에 선보인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한국은 물론 브라질, 프랑스, 인도, 터키 등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미국에서도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22일 연속 ‘오늘의 톱 10’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이미 1억1000만 가구가 이 드라마를 시청했다.

 

평가도 압도적이다. 찬반이 교차했던 국내에서와 달리 해외에서는 격찬 일색이다. ‘포브스’는 <오징어 게임>을 “가장 기이하고 매혹적인 넷플릭스 작품 중의 하나”라며 “신선한 아이디어와 스릴 넘치는 드라마”, “단순한 놀라움 그 이상을 선사”한다고 평가하고 ”무조건 봐야 할 드라마‘라고 상찬했다.

 

무엇이 세계가 한국 드라마에 이토록 열광하도록 만들었을까?

 

“정말 죽여주는 작품”이라고 호평한 미국의 CNN은 “<오징어 게임>이 화제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하는 것은 과소평가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기생충>에 이은 드라마 <D.P.>와 <오징어 게임>이 가진 공통된 특징은 시청자들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강력한 축소판을 제시한다”(NEM), “계급문제에 대한 비판은 충격적이고 마음을 사로잡는다”((Brights Hub)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와 미드에서도 얼마든지 보아왔던 뛰어난 연기력과 넘치는 스릴러, 창의적인 사건에 더한 한국 드라마의 힘은 현실에서 탈주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과 은유를 포기하지 않는 사회의식이었다.

 

한국 드라마의 약진은 픽션인 드라마와 떼어놓을 수 없는 논픽션인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비판을 담은 이 드라마를 매우 불편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할 부패한 기득권 집단들까지 태연히 시청한다. 심지어 50억의 퇴직금을 받아 챙긴 대리까지 인용한다.

 

그래도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내는 한국사회는 희망이 있다. 적자생존, 승자독식, 규칙을 지키면 손해를 보고 규칙을 어기면 이익을 보는 게 어디 대한민국뿐이겠는가. 그런데 왜 지난 세기에 세계가 우러러보며 배우고 쫓아가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징어 게임>같은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까? 절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희망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한국의 젊은이들은 잘난 유럽과 미국 지식인의 현학적인 저술과 영화를 보고 배우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인생을 배운다.

 

최근에 나온 드라마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어떻게 인생의 조언을 드라마에서 구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언니’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저자인 동시에 드라마 그 자체다.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고 밤새 속앓이 할 필요 없이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드라마를 보며 길을 찾아가는 세대의 내면을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은 아주 흥미롭게 보여준다.

 

문화전문지를 통해 등단한 국내 공식 드라마평론가 1호인 저자가 쓴 이 책이 소개하는 드라마 40편은 기성세대에게 몹시 낯선 MZ세대가 어떤 캐릭터들을 보고 스스로의 캐릭터를 만들어왔는지,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슬기로운 언니의 드라마 사전’이라는 부제가 어울릴 것 같은 이 책은 말한다. ‘드라마가 내 언니다. 나이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배울 게 많으면 언니지. 드라마는 나의 슬기로운 언니다. 내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수시로 오갈 때마다 영혼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내 인생 최고의 자문위원, 그녀만큼 다양한 사건·사고와 다양한 희로애락을 경험한 사람을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세계가 한국 드라마를 부러워한다, ‘한국드라마’를 가진 한국을 부러워한다. 한국의 운동장이 덜 기울어져서도, 한국 사회가 덜 불공정해서도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불공정한 사회를 비판할 힘이 아직 남아 있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드라마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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