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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웃기고, 창피하고, 화나고, 우울한 시대

 

#불안하다.

 

영화 ‘부산행’으로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가 ‘반도’와 ‘방법: 재차의’ 등으로는 비교적 혹평을 받았던 감독 연상호가 이번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으로는 글로벌 순위 1위에 올랐다. 연상호의 화려한 부활이다. ‘지옥’ 뿐만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은 여전히 2위이고 ‘갯마을 차차차’, ‘연모’, ‘마이 네임’ 등도 인기가 최고 수준이다. 다들 국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28개국, 많게는 70여 개 국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K콘텐츠의 인기가 최절정이고 상한가 중에 상한가다.

 

그런데도 왠지 불안하다. 이런 분위기가 과연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데, 문화의 발전은 정치의 그것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는 더욱더 그렇다. 중국의 영화계가 제5세대 감독(첸 카이거, 장예모)과 제6세대 감독(로예), 지하전영 감독들(지아장커)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왜 걸작의 불모지가 됐는 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시진핑의 권위주의 국가 시스템 때문이다. 정치가 닫히면 영화가 닫힌다.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나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감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변방으로 밀려났는지도 아베와 이후의 자민당 극우 정치가 만들어 낸 폐해를 들여다보면 알 수가 있다. 정치는 영화이고 영화는 정치이다. 푸틴 이후 러시아 영화는 3류 액션 블록버스터로 전락해 있다. 정치가 엉망이 되면 영화와 드라마는 수렁에 빠진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더 치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꺾일 것인 가. 우리는 지금 그 기로에 서있다. 그래서 불안하다.

 

#정말 웃긴다.

 

매일처럼 쏟아지는 정치뉴스는 차라리 개그다. 방송에서 ‘개그 콘서트’ 같은 정규 코미디 프로가 없어진 이유이다. 같은 류의 프로그램을 중복 편성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 수 있다. 손에 왕(王) 자를 새기지를 않나, 그런 무속신앙적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유수 기독교 목사들이 단체로 안수 기도를 드려 주지를 않나, 반드시 와 반듯이 와 같은 초등학교 맞춤법 논란이 일어나지를 않나 등등 하여간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그렇게 자랑질을 일삼는 최고 명문대 출신들의 수준이 이럴진대, 그런 인간형들이 모여 있다는 검찰이나 법조는 과연 어떻겠는가. 아니면 일명 폭탄주를 평소에 너무 많이들 마시는 것 아닌가. 지나친 음주는 뇌세포를 파괴하기 마련이고 지능지수와 지적 수준을 급격하게 퇴화시키게끔 돼있다. 어쨌든 개그맨들, 코미디언들만 안됐다. 그들만큼은 웃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창피하고 화가 난다.

 

자신의 정치관을 바꾸는 것은 좋다. 살다 보면, 나이를 먹다 보면 좌가 꼭 좌가 아닌 것이 되고 우가 꼭 우가 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6·8 혁명의 주역들이 어떻게 변질됐는지, 미국의 1970년대 반전, 학생운동의 주역인 톰 헤이든 같은 인물이 어떻게 기득권화됐는지 등등은 누누이 목격해 왔던 바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 여기 한국 같지는 않았다. 광주항쟁을 함께 했던, 김대중 같은 몇 안 되는 한국의 정치지도자의 뜻을 따랐던 사람들이 파시스트였거나 그럴 위험이 있는 정치그룹과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 그건 밀정 짓이다. 악랄한 배반이다.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 박정희 정권을 비판한 후 체포되고, 고문받고, 투옥됐었던 통일사회당 김철 당수의 아들이라면 아버지 영전에 부끄러워서라도 변절의 길을 가서는 안될 것이다. 그건 반대로 80년대 학생운동 그룹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상대 계파가 싫다 해도 극우와 손을 잡는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

 

이재명은 파시스트이고 윤석열은 자유주의자이니 만큼 좌파는 윤석열과 연대를 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이상한 구분법인가. 어떻게 학자 입에서 이런 엉뚱한 정치, 사회 분석이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독재 정부 인가.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 시대와 비교할 때 대체 어느 지점에서 같은 점이 있다는 말인가. 체포영장 없이 구금되는 적이 있는가.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한들 언론에 재갈을 물린 적이 있는가. 집회 결사의 자유가 봉쇄된 적이 있는가. 이게 무슨 해괴한 망발들인가. 실로 창피한 언행들이다.

 

#우울하다.

 

김지운 감독의 저주받은 수작 ‘인랑(人狼)’은 정부 병력인 특기대와 반정부/ 반통일 세력인 섹터와의 싸움을 그린 얘기지만 알고 보면 정부 내 또 다른 권력 조직인 공안(公安)이 은밀하게 섹터와 손을 잡고 정부를 전복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기대는 공안/ 섹터의 공격이 거세지자 전위 공격대인 인랑을 만들어 이에 대항한다.

 

거의 4년 전 만들어진, 이 정부 초창기에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영화의 내용은 지금의 혼란기를 그대로 예언하고 있는 듯한 작품이다. 영화 속 반통일 세력과 지금의 종전선언 반대 세력의 모습이 흡착돼 보인다.

 

영화의 끝은 우울하다. 우리의 끝도 그럴 것인가.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을 구속까지 시켰던 지금의 보우소나루 극우 정권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지는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에 잘 나와 있다. 문재인에 대한 정치보복은 진작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브라질의 다큐가 여기, 한국에서도 똑같이 시행된다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아마도 상당수 국민들의 우울증이 심각해질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볼 것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우울하고 또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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