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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담벼락 곳곳에 호랑이 '어흥'…안성 복거마을 가보니

2009년 미술 테마마을로 벽화 작업…한때 관광객 북적
호랑이 닮은 뒷산 형세에 옛지명 '복호리'…"낡은 그림 보수했으면"

 

경기도에는 '호랑이 마을'로 불리는 곳이 있다.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안성시 금광면 신양복리의 '복거마을'이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를 사흘 앞둔 29일 찾아간 복거마을은 온통 호랑이 천지였다.

 

마을 어귀로 들어서자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철제 호랑이 조형물이 이방인을 반겼다.

 

조형물 맞은편에 있는 마을회관 건물에는 여기저기 알록달록한 호랑이 발자국 모형이 붙어있어 호랑이 마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했다.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담벼락과 주택 외벽을 수놓은 호랑이 벽화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호랑이들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곰방대를 물고 있거나 주택 외벽을 따라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등 저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담벼락 위와 길가에도 작은 호랑이 모형이 올려져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했다.

 

한적한 농촌 마을 곳곳에 호랑이들이 머물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애초 안성시 보개면에 속했던 복거마을의 옛 지명은 '복호리(伏虎里)'였다. 뒷산의 형세가 호랑이가 엎드려 앉은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후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바람에서 '복거리(福巨里)'로 지명이 바뀌었는데, 1914년부터 1998년까지 이 지역이 인근의 양협리와 합쳐지고 금광면으로 편입되는 등 행정구역 개편을 거친 끝에 현재의 신양복리가 됐다.

 

이런 복거마을이 호랑이 테마마을로 변모한 때는 200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성시는 행정안전부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추진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공모사업의 하나로 신양복리에 미술마을을 꾸미는 계획을 세웠다.

 

시 관계자와 마을 주민들이 전국의 여러 이색 마을을 찾아다니며 고민한 끝에 옛 지명 복호리에 착안해 '호랑이를 기다리며'라는 테마를 선정했다.

 

2009년 1월 21일부터 7월 31일까지 6개월간 해당 사업을 총괄한 대안미술공간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붓을 들고 벽화 꾸미기에 나선 끝에 복거마을은 아기자기한 테마마을로 거듭났다.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이 마을 장갑수(61) 이장은 벽화마다 그린 주민의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로 새 단장이 한창이던 마을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장 이장은 "어르신들께서 마을 꾸미기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예술인들과 회관에 모여 정기적으로 미술수업도 받으며 열과 성을 다하셨다"며 "손재주가 좋은 몇몇 주민은 전문가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담벼락에 근사한 작품을 남겨 한동안 마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주민들은 복거마을에 호랑이들이 들어서면서 한동안 동네 분위기도 밝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이모(71) 씨는 "마을이 새 단장을 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한때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도 많이 찾아와 동네가 북적거렸다"고 했다.

 

한 60대 주민은 "마을주민 대부분이 '마을이 예뻐지니 훨씬 보기 좋다'며 달라진 모습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고 말했다.

 

다만 테마마을이 조성된 이후 별다른 관리나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이전같이 알록달록한 모습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어 안타깝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몇몇 벽화의 경우 세월이 흐르며 색이 바랬고, 깨진 조형물이 보수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기도 해 어느 시점부터는 방문객 발길도 끊겼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장 이장은 "테마마을이 조성된 이후 꾸준히 유지·보수 작업이 이뤄졌다면 복거마을이 어엿한 관광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며 "주민 대다수가 나이도 많고 전문지식도 없어 스스로 관리에 나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마을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할 기회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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