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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예술기행] ⑪ 가브리엘 포레와 에비앙

 

 

레퀴엠(Requiem).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이다. 그래서일까. 무섭고 장중하고 근엄하다. 하지만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의 레퀴엠은 전혀 다르다. 지옥불처럼 요동을 치는 모차르트와는 달리 아주 상냥하고 평화롭다. 죽음은 결코 황망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 이것이 포레의 철학이다. 그의 파반느(Pavane) 역시 너무도 아름답다. 피아노 선율과 트럼펫 소리는 우리의 심연을 오묘하게 파고들어 흔든다.

 

독일풍이 아닌 프랑스풍을 구가했던 포레. 키는 작았지만 뚝심의 사나이였다. 그의 고집은 프랑스 음악을 바그너 음악으로부터 탈피시켰다. 그가 격찬 받는 이유 중 하나다. 포레는 베를리오즈 시대가 가고 드뷔시의 시대가 오기 전 가장 위대한 작곡가였다. 하지만 그가 하루아침에 명성을 얻은 건 아니다.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유명하게 되자 비평가들은 흔들어댔다. 그러나 포레를 괴롭힌 건 혹평이 아니라 신체적 장애였다. 귀머거리 작곡가하면 베토벤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포레 역시 그러했다. 선율을 들을 수 없다면 작곡가의 인생은 끝난 게 아닌가. 하지만 역경 속에서 더 찬란했던 사람들이 있다. 포레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청각을 잃으면서부터 내적 세계에 더 심취했고 음악 스타일을 새롭게 바꿨다.

 

프랑스 남쪽 끝 지점 아리에 주 파미에르(Pamiers)에서 태어난 포레.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그의 아버지의 덕에 일찍이 파리로 유학을 왔다. 그러나 포레는 정통 음악 학교인 파리음악원이 아닌 니데르메이에르(Niedermeyer) 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11년간 수학했다. 이단아였던 포레. 하지만 그의 스승인 생상스와 자신의 탁월한 재능 덕에 파리 대성당 마들렌느의 오르가니스트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런 포레가 시련 속에서 찾은 곳이 있다. 에비앙(Évian)이다. 에비앙의 본래 이름은 에비앙 레 뱅(Évian-les-Bains). 이 마을은 론 강과 레망(Léman) 호가 합쳐지는 곳이어서 풍경이 기막히다. 여기에 신은 알프스의 수려함까지 선사했다. 이곳 레망 강가에서 70살의 노인 포레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를 작곡했다. 이곳의 수려함이 녹아들어 가서일까. 이 작품들은 포레의 수작으로 꼽힌다.

 

포레가 머물렀던 에비앙. 이 매혹적인 마을에는 9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마을이지만 특히 이곳은 물이 빼어나다. 에비앙 광천수. 그 유명한 물병을 안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비앙이 물의 도시가 된 것은 프랑스혁명을 피해 도망친 오베르뉴의 한 후작 때문이다. 이 후작은 매일 정원에 있는 샘물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요도결석이 나은 것을 알았다. 그 후 에비앙 수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후작의 샘은 1903년 카샤(Cachat) 샘으로 리모델링돼 지금은 에비앙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됐다.

 

한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절망한다. 그런 절망 속에서 어느 날 멀리 떠나고 싶다면 에비앙을 한 번 찾아가 보라. 알프스 산허리를 굽이굽이 걸어도 보고, 레망 호의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 혹시 여유가 생긴다면 포레의 레퀴엠도 한 번 들어봐라. 나도 모르는 순간 절망의 페이지는 넘어가고 희망의 새 페이지가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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