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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뉴스 생활] 사진이 보여주는 것

 

“1980년 5월에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고, 인터넷이 있고, SNS가 발달했다면, 신군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했을 겁니다.” 나경택 기자는 지금도 5월이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기자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쉽게 잊히지 않는 듯했다. 광주 지역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랬듯 그 참상을 목격하고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사진 한 장을 싣지 못했다. 신군부의 보도통제 때문이었다.

 

TBS가 5·18민주화운동 42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오일팔 증명사진관’에서 나 기자는 당시 광주의 상황을 밖으로 알릴 수만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광주는 고립무원의 도시였다. 광주와 전남 지역 외 다른 곳에서는 광주의 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정부는 광주시민을 무자비한 폭도로 매도했다.

 

나 기자는 건물에 숨어 촬영을 계속했다. 옷 안에 카메라를 숨기고 다녔다. 건물 옥상에서 군용헬기가 자신을 조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황급히 숨었던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그는 계엄군이 시민을 곤봉으로 구타하는 장면을 찍었다. 광주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름과 사진을 잃을 수 없었다. 중요한 필름은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 천장에 숨겼다. 집이 수색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현상한 무더기 사진은 친구의 집 장독대에 숨겼다. 이 사진이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에 공개되면서 광주의 진상이 알려졌다. 계엄군으로 참가한 공수부대가 과잉 진압을 벌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됐다.

 

2015년 9월 공개된 사진 한 장은 유럽의 난민 수용을 둘러싼 여론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터키 휴양지 보드럼 해변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숨진 소년의 이름은 아일란 쿠르디. 그의 가족은 내전 중이던 시리아를 떠나 지중해 건너 유럽으로 향했지만 도착하지 못했다. 작고 좁았던 배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마치 엎드려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바다를 향해 누워 있던 쿠르디는 세계인의 양심을 일깨웠다. 당시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존 입장을 선회해 독일에 오는 시리아 난민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사진을 찍고, SNS로 공유하는 것쯤은 너무 쉬운 일이 됐다. 사진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 배우자가 경찰견을 쓰다듬는 사진도 그렇다. 다소 전문적이지 않아 보이는 구도와 보정이 안 된 사진은 정반대의 것보다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사진 속 치마의 주름 모양과 소재를 추정해 5만 원대 제품이었음을 찾아내는 일 따위도 별 것 아닌 게 됐다. 대통령 배우자가 입고 착용했던 옷가지와 안경테 스타일과 가격을 포털 메인창에 띄우는 언론이 한둘이 아니다. 사진으로 어떤 의도를 드러내서가 아니라,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 선례를 남긴 언론을 두고 보자니 불편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