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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손웅정

 

 

손흥민의 아버지다. 1962년생. 예순한 살. 환갑이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할 때까지는 매우 유능한 축구선수였다. 그 아들이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먹었다. 나는 그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자서전을 찾았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책을 펼쳤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이 문장은 실은 성공한 아들들의 흔한 효도발언을 출판사가 광고카피로 뽑아 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초장부터 손웅정에게 빨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칭 '마발이 3류 축구선수'가 쓴 이 책이 오늘 나처럼 부실한 가장들은 물론 이 해괴망측한 시대를 내리치는 죽비였기 때문이다.

 

한 마라토너가 2012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크로스컨츄리 경기에 출전하여 2위로 달리고 있었다. 선두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케냐의 아벨 무타이 선수. 그런데 그가 종점을 착각하여 멈추려 했다.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아니야는 무타이를 추월하지 않고 손짓으로 결승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가 금메달을 따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에 대하여 1등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 고 묻는 기자에게 아니야가 답했다.
"그가 이기고 있었을 뿐이다. 설령 내가 그를 제치고 우승했다 해도 그건 명예롭지 않다.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시겠나?" 아니야는 이로써 금메달 보다 열 배 더 빛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니야가 손웅정이다. 

 

2019년 토트넘의 원정경기인 에버턴 전에서 손흥민의 태클로 상대방 수비수 안드레 고메스가 발목골절상을 입었다. 손은 주저앉아 울었다. 벌칙으로 인한 손해 때문이 아니었다. 고메스가 선수생명을 잃을까 봐 두렵고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부자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 천만다행. 쾌차했다. 결국 판정은 번복되고 벌칙은 취소되었다. 

 

"상대가 넘어지는 걸 보면, 그 상황이 너에게 골찬스라 하더라도 공을 밖으로 차내고 사람부터 챙겨라. 너는 축구선수이기 전에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한 말이었다. 

 

축구는 전쟁을 게임으로 바꿔놓은 엔터테인먼트다. 본질은 격렬하고 치열한 패싸움이다. 손웅정은 이 축구에 휴머니즘과 품격의 금테를 둘렀다. 손흥민은 누구나 비슷한 기본기, 체력, 승부욕 외에 아버지가 인생을 걸고 가르친 바로 저 겸손, 성실성, 낙천주의, 팀스피릿 등의 집합체다. DNA다.

 

손웅정은 이 정도 수준 높은 인문교양서를 낼만큼, 아들을 잘 키워 세계 최고로 우뚝서게 할만큼 비범한 인물이다. 자신을 고도의 지성으로 끊임없이 진화시켰다. 1년에 100권의 책을 3색 펜으로 줄 치고 메모하며 삼독한다. 그 엑기스를 아들에게 먹인다. 산삼보약이다.
 
'손흥민 싸커'는 손웅정의 옥토에서 생성되는 가치들을 자양분 삼는다. 매번 놀랍지만, 고로 당연한 예술이다. 

 


네티즌 의견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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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자
  • 사너멀
    • 2022-06-16 0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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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훌륭한 아버지이십니다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말
    감동이었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책을 사서 보려고 했는데 오늘 주문해야겠네요

  • 주사랑
    • 2022-06-15 18:45:38
    • 삭제

    위대한 선수들이
    인격도 훌륭하다는것이 증명될 때 정말 기쁘고 축복하게 됩니다.
    선생님도 또 다른 손웅정 이십니다.

  • 주사랑
    • 2022-06-15 18:44:26
    • 삭제

    위대한 선수들이
    인격도 훌륭하다는것이 증명될 때 정말 기쁘고 축복하게 됩니다.
    선생님도 또 다른 손웅정 이십니다.

  • Angel7
    • 2022-06-15 18:26:53
    • 삭제

    아 너무나 감동적인 글입니다
    손웅정 자서전, 가을에 가면 꼭 구입해야겠네요
    겸손, 성실, 낙천주의, 팀스피릿…
    인격에 금테를 두를만한 위대한 아버지요! 모델입니다

  • 테트라
    • 2022-06-15 17:32:44
    • 삭제

    가난으로 배움이 부족했던 어느 아버지가 두아들에게 학원 보낼비용이 없어서 본인이 공부하여 두아들을 가르치고 지도하여 훌륭하게 서울 유명 대학에 보낸 예기가 있었는데,. 모름지기 훌륭한 바탕에서 큰 재목이 나온다는 것이 다시한번 와 닿습니다.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온갖 편법을 써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교훈이 될겄입니다.

  • 우보
    • 2022-06-15 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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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인, 손흥민선수, 그런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내신 아버지, 모두 응원합니다 ^^

  • 김일광
    • 2022-06-15 13: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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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짧은 글을 읽고 바로 눈물이 나왔다. 손웅정의 힘인가. 오세훈의 힘인가. 아님, 하루종일 내리시는 비님 때문인가.

  • 공풍
    • 2022-06-15 10:15:01
    • 삭제

    손홍민은 아직 월드 클래스가 아니라는 아버지 인터뷰가 있었지요. 하지만 경기를 보면 확실한 월드 클래스~~~. 겸손하고 아직도 발전해야 한다는 뜻

  • 소나무산
    • 2022-06-15 1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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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손웅정 님 존경스럽습니다.
    오세훈 선생 글로 책 한권 다 읽은 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attention
    • 2022-06-15 09: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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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운샹동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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