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참 배우 톰 크루즈를 스타 반열에 진입시킨 영화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가 스물네 살 때 찍은 '탑건'입니다. 비행전투 영화의 전설로 불리는 작품이지요. 인도양을 배경으로 가상적국과 싸우는 최정예 파일럿. 항공점퍼와 청바지 입고 연인을 오토바이 뒷자리 태운 채 해변을 달리는 로맨틱한 장면이 아직도 계속 다운로드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토바이 기종이 뭐냐는 질문이 36년째 인터넷에 올라오는 중이지요. 답변 : 1986년 당시 가장 최고속도가 빨랐던 카와사키 닌자 GPz900R.
크루즈는 이후 휴양지 바텐더(칵테일)와 드라큘라(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배역 등으로 수십 편의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부터 일곱 번 째 제작 중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통해 마침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흥행배우로 자리를 굳힙니다.
출연하는 모든 작품에서 빛나는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역할에 대한 이해력과 몰입도가 대단한 거지요.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가 가장 실감이 나는 분야는 역시 SF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우주전쟁(2005년), 오블리비언(2013년),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같은 작품들이 그렇지요. 광고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제 입장에서 그 중 제일 주목되는 것은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입니다. 필립 딕(Philip Dick)의 단편소설을 기초로 2002년에 만들어진 영화지요.
여기서는 예지능력을 지닌 세 명의 (프리콕스(precog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특수 액체 속에서 ‘사육’되며 머리에 항상 전극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사건의 시간, 장소, 범인을 예측한 다음 그 영상을 모니터에 띄웁니다.
영화의 핵심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서기 2054년의 미국 워싱턴에 세 소녀의 이런 초능력을 기초로 미래의 중범죄자를 한발 앞서 체포하는 전문 경찰 부서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톰 크루즈는 "프리크라임(PreCrime)"이라 이름 붙여진 이 부서의 지휘관이지요. 사건은 소녀들이 프리크라임 최고책임자의 살인 장면을 영상으로 떠올리면서 벌어집니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주인공은 거꾸로 음모에 빠집니다. 그리고 살인혐의를 뒤집어쓰고 필사의 반격을 시도하게 되는 거지요.
영화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나구요? 러닝타임 45분 정도가 되었을 때 광고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 하나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체포를 피해 도망치던 존 에더튼(톰 크루즈)이 목이 바짝 타들어가는 표정으로 거리를 걸어갑니다. 그렇게 옥외에 설치된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digital information display, DID) 앞을 지나는데, 영상 속에서 아름다운 여성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닙니까. 이렇게 속삭이면서 기네스맥주를 마시라고 유혹합니다.
“맥주로 갈증을 푸세요”.
이어지는 다음 화면에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손에 든 또 다른 미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카드 결제 후 여행을 떠나라고요.
“스트레스가 쌓이죠 존 에더튼? 떠나세요 골치 아픈 건 다 잊구요.”
거리가 온통 렉서스, 불가리 향수 등 초일급 브랜드 구입을 설득하는 디스플레이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것이 미래 광고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도대체 화면 뒤에 무엇이 있어서 주인공의 정체를 정확히 식별한 걸까요. 심지어 그가 스트레스 상태에 있다는 것까지 알아챘을까요. 그리고 존 에더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욕구를 미리 예측해서 광고를 때린 걸까요?
생체인식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결합된 최첨단 개인 맞춤형 광고(biometric personalized advertising)입니다. 그게 벌써 20년 전 영화에 등장한 겁니다.
2.
사람의 생물학적, 해부학적 특징을 자동으로 측정해서 신분을 정확히 파악하는 기술이 생체인식입니다. 음성인식, 지문인식, 안면 인식 등 이미 우리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지문으로 출입문을 열거나 스마트폰 잠금화면을 풀 때 얼굴을 보여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오늘날 생체 인식은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기술 시장입니다. 성장률이 매년 17.41%에 달합니다. 2025년이면 시장 규모가 무려 590억 달러(74조원)로 팽창할 걸로 예상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앞선 분야가 망막인식(Retina-scan)과 홍채인식(Iris-scan)입니다. 특히 눈의 홍채를 이용한 인식기술이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79억 명의 인류 가운데 똑같은 홍채 무늬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요. 도저히 위장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개별적 특징인 거지요. 이런 황금 시장을 기업들이 그냥 놓아둘 리 있겠습니까. 특히 광고가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듯이 고도로 개인화된 개인맞춤광고(personalized advertising)를 강력한 무기로 동원하고 있는 겁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장면을 통해 이들 광고가 작동하는 방식을 한번 살펴볼까요. 먼저 길거리에 촘촘히 설치된 초고성능 cc-tv가 보행자들의 눈동자를 비추고 홍채 특징을 인식합니다. 다음 순서로 가공할 성능의 슈퍼컴퓨터 AI(인공지능)가 빅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작동시킵니다.
빅데이터(big data)란 온라인을 사용하면서 남긴 개인 신상, 제품 구입 정보, 금융거래 정보, 온라인 접속 및 검색 기록을 총망라하는 자료입니다. 여기에 성별, 나이, 소득, 출신과 교육배경 등의 정보가 크로스체크되지요. 요즘 SNS 안 하는 사람이 없으니, 해당 플랫폼에 올린 글, 사진, 동영상 등도 당연히 대상이 됩니다.
AI는 그 같은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고객 심리, 제품 구매형태,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에 관련된 개인별‘행동프로파일’을 만듭니다. 그리고 당사자가 현장에서 포착되면 그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광고를 선제적으로 때리는 겁니다. 이것이 광고 속 여인들이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존 에더튼을 유혹하는 비밀인 거지요.
이것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미국, 일본 등에서는 행인들 얼굴을 AI가 인식한 다음 나이, 성별 기준에 따라 개별 광고를 노출시키는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사건이 전개되는 시점은 2054년입니다. 그보다 30여년이나 앞서 영화 속 상상이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거지요.
구글, 네이버, 다음 같은 사이트에서 검색을 하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 접속했을 때 평소에 관심 있는 제품 광고가 족집게처럼 떠오른 경험 있으시지요? 그게 바로 개인맞춤형 광고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 헬스에 관심이 많아 관련 정보를 검색하거나 유튜브 같은 데서 보디빌딩 장면을 자주 본다고 합시다. 그러면 단백질 보조제나 철봉 운동 기구 같은 제품 광고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에 빈번히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테크놀로지가 고도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헬스장에서 생체인식이 허용된다고 가정해보지요. 한 여성이 매일 오전 10시에 정기적으로 체육관을 찾아옵니다. 트레드밀 위에서 1시간 동안 조깅을 합니다. 그런데 바벨이나 덤벨, 기계기구를 이용하는 근력운동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한 AI는 이 여성의 스마트폰에 어떤 맞춤형 광고를 던질까요? 근육을 키우는데 도움 주는 스쿼트업 밴드는 보여주지 않을 겁니다. 조깅용 고급 스포츠화처럼 유산소 운동에 최적화된 제품을 집중적으로 권유하겠지요.
오늘 현재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된 온라인광고 방식은 문맥광고(contextual advertisement)입니다. 정보 추적, 수집, 활용의 단계를 넘어 사용자가 읽고 듣고 보는 콘텐츠의 내용과 연관된 문맥(context)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거지요. 사용자가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를 넘어, 그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부 내용까지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연관성 높은 광고를 자동으로 노출시키는 비교불가의 타기팅(targeting) 광고를 실행합니다.
3.
주목해야 할 것은 AI와 빅데이터 분석의 결합이 장밋빛 일색은 아니라는 겁니다. 빛이 밝은 만큼 어둠도 깊습니다. 그런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지요. OTT 채널 넷플릭스(Netflix)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소셜 딜레마(Social Dilemma)'입니다(그림 4).
2020년에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거대 IT 기업의 전(前) 임원과 엔지니어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이들의 입을 통해 구글, 애플,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이른바 빅 테크(Big Tech) 기업들이 상업적 이익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은밀한 활동을 전개하는지가 폭로됩니다.
그들은 증언합니다. 지금도 이들 기업의 방대한 지하 공간에서는 슈퍼컴퓨터와 서버들이 1000분의 1초(msec) 단위로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그리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온라인 클릭, SNS 좋아요 누르기, 직접 만들어 올린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여러분이 해당 플랫폼을 접속하면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주르르 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조직적으로 결합된 광고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진짜 살인범이 처단된 후, 미래 범죄를 없애겠다는 망상적 목표를 지닌 경찰부서가 해체됩니다. 그리고 사육의 운명에 처해졌던 소녀들이 자유를 얻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닥쳐야 할 운명은 아무리 애를 써도 피할 수 없다는 진실을 전달하려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억지 수단으로 인간의 마음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려던 걸까요.
영화 속 경찰조직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화면에 나타났던 무시무시한 첨단 광고의 세계는 지금 성큼 현실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영화를 처음 본 20년 전, 저는 cc-tv 불빛이 사람들 눈을 비추고 홍채가 반응하는 장면에서 왠지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빅브라더’가 시민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물 샐 틈 없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 말입니다.
오웰의 소설에서 통제 권력의 핵심은 정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본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고를 무기로 사람들을 분석하고, 설득하고 행동을 제어하려 합니다.
문제는 거대 IT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는 사용자 빅데이터의 상업적 활용을 막아낼 뾰족한 수단이 현재로는 없다는 겁니다. 사용자 추적 쿠키와 인앱 식별 기능을 제 마음대로 써먹는 광고의 탐욕을 제어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거지요. 이 문제에 대한 IT업계의 자율적 움직임이 없지는 않습니다. 몇몇 거대 기업과 정부기관이 개인정보 보호 강화를 목표로 온라인 앱의 사용자 활동 추적 제한을 검토 중입니다. 빅테크 기업의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는 구글과 애플이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이윤을 향한 자본의 탐욕이 자율규제를 통해 제대로 제어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대 광고가 태어난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허위과장광고의 폐해가 하도 심해지자, 1904년 자율적 광고윤리 준수를 다짐하는 최초의 전국적 광고업자 모임(Associated Advertising Clubs of America)이 결성됩니다. 하지만 유명무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나마 실질적 통제가 가능해진 것은 1914년에 광고 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강력한 규제권한을 지닌 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설립되고 난 후부터였지요.
생체인식 기술을 필두로 하는 첨단 광고가 발전하면 할수록 (허락받지 않은) 사용자 정보탈취와 약탈적 이윤추구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 도입이 요즘 서구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게 그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IT 환경에 관한 한 세계 최고수준에 이른 우리나라에서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여론의 조명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지만, 해당 이슈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가 필요한 시점이 조만간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