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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산재 근로자 두 번 죽이는 산재 소견서 양식

 

퇴행성 관절염으로 치료를 받던 근로자 A 씨는 최근 산재 신청을 위해 주치의에게 산재 소견서 작성을 부탁하였으나, 담당 주치의는 산재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으므로 산재 소견서를 작성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또 다른 근로자 B 씨는 허리디스크에 대해 산재로 요양한 이후 장해급여 신청을 위해 주치의에게 산재 장해진단서 작성을 부탁하였으나, 주치의는 산재 장해진단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작성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근로자 A, B 씨의 위 사례는 실제 발생한 일이며, 위와 같은 사례는 비단 A, B 씨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초 산재 신청을 포함하여 산재와 관련된 각종 보험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이 정하고 있는 서식을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초 산재 신청 시에는 ‘산재 요양급여 신청 소견서’를 주치의에게 받아야 하며, 장해급여 신청 시에는 ‘산재 양식의 장해진단서’를 받아 제출해야 한다. 재요양이나 추가상병, 상병보상연금 등을 위해서도 항상 산재 양식으로 주치의 소견을 받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위 사례처럼 산재 양식으로 소견서나, 장해진단서 작성을 요구하면 의사들이 이를 매우 꺼리거나, 아예 작성을 거부하는 일도 빈번하다는 것이다. 반면 일반 소견서나 진단서 양식은 전혀 그렇지 않다. 왜 이렇게 산재 양식은 꺼리는 것일까? 이유는 주치의가 산재 양식으로 소견서나 진단서를 작성하면 산재승인이나 불승인 등 산재를 판단하는 것에 있어 관여한다고 생각해서이다.

 

하지만 실제 산재와 관련된 판단은 주치의 소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별도의 자문의사를 두고 있으며, 전문조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직업환경연구원과 같은 공단 소속 기관에서,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이를 결정한다. 때문에, 주치의 소견은 상병 상태 확인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

 

근로복지공단도 이를 인식하여 2019.8.26. 보도자료를 통해 복잡한 산재 양식의 기재항목을 대폭 줄이고, 공단이 정한 서식으로 제출해야 했던 의료기관의 소견서 역시 이를 제출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일반 진단(소견)서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일반 소견서나 진단서로 제출 시, 여전히 산재 양식으로 다시 받아올 것을 요구하는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들이 많다. 위 A, B 씨의 사례도 주치의가 산재 양식으로의 작성을 거부하여 일반 소견서 및 진단서로 대체하여 보험급여를 신청한 것인데, 공단 담당자들은 산재 양식으로 다시 받아올 것을 요구하였다.

 

심지어 한 담당자는 산재 양식으로 받아오지 않으면 신청서류를 반려할 수 있다고까지 하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이후에 근로자가 말하길 대리인을 선임하여 담당자와 싸우지 않았다면 산재 신청이 아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그냥 포기하려고 했다고 한다.

 

재해를 당한 근로자들은 산재 양식으로 소견서나 진단서를 작성해 달라고 주치의에게 강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주치의와 얼굴을 붉혀 좋을 것이 없고, 소견서나 진단서도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성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서 담당자가 산재 양식만을 고집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일반 소견서나 진단서에는 산재 양식만큼 자세히 항목이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담당자가 전산에 입력할 때 애를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단은 공문 등을 통해 직접 의료기관에 이를 확인·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단 담당자의 노고가 재해당한 근로자의 아픔보다 절대 클 수는 없다. 산재를 신청하는 첫 관문에서부터 산재 근로자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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