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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 어버이의 나라

 

 

인조반정(仁祖反正)은 쿠데타다. 쿠데타로 왕좌를 빼앗은 자는 능양군(綾陽君) 이종(李倧)이고 빼앗긴 자는 광해군(光海君) 이혼(李琿)이다. 조카에게 왕좌를 빼앗긴 광해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자들은 쫓아낸 광해군의 죄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중국을 섬긴지 2백여 년, 의리로는 임금과 신하관계요 은혜로는 부모와 자식관계로다. 그러함에도, 배은망덕한 광해군은 천명을 어기고 오랑캐에게 투항하는 대역죄를 범하였음이라.” 명(明)과 후금(淸) 사이에서 관형향배(觀形向背)하던 광해군의 외교정책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정이 그러하였으니, 쿠데타로 등극한 인조가 ‘숭명반청(崇明反淸)’을 부르짖은 건 당연했다.

 

인조와 쿠데타 세력은 명나라를 끔찍이도 ‘추앙’했다. 추앙의 정도가 어찌나 지극하던지, 왕은 명나라 황제의 신하이기를 자청했고, 쿠데타 주역들은 명나라 황제의 자식이기를 갈망했다. 신하이자 자식의 눈에 청나라가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그들에게 청(淸)은 오랑캐에 불과했다. 아버지 나라를 도와 청(淸)과 싸우겠다던 인조는 전쟁이 일어나자 궁을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칠 때, 인조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감고 닫은 왕의 마음에 백성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두 번째 쳐들어왔을 때, 남한산성에 숨어있던 왕은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항복했다. 항복한 왕은 청나라 황제를 향해 세 번 큰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찧었다.

 

세자와 함께 60만 명의 백성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그중 50만 명이 여성이었다. 몸값을 치르고 살아 돌아온 여성들은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 양반집 아녀자들로 실록(實錄)에 기록된 속환녀(贖還女)가 그녀들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라는 뜻의 환향녀(還鄕女)로 불리다가 ‘화냥년’의 어원이 되었다는 주장은 헛소리다. 정절을 잃었다며 이혼을 요구한 사대부들의 비겁과 다를 게 없다. 부끄러워야 할 자는 그녀들이 아니라 왕과 사대부들이다. 사대주의(事大主義)와 당파에 찌들어서 전쟁을 막지 못한 왕과 사대부의 잘못이다. 제 목숨 부지하겠다고 아내와 딸과 누이와 만백성을 인질로 잡힌 그자들이 문제다.

 

안타깝게도, 400년이 지났지만 그자들은 여전하다. 위안부 할머니를 가리키며 창녀라고 비웃는 자들이 그렇고, 성조기를 흔들며 맹목적으로 미국을 섬기는 ‘대한美국’ 국민이 그렇고, 선제타격 운운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는 정치집단이 그렇고, 광복절 축하연설에서 ‘일본은 자유를 위해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이웃’이라 선언하는 대통령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관심사에 백성은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당파싸움을 하며, 미국의 신하가 되기를 갈망하고 아버지의 나라로 모실 것을 맹세한다. 그러니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과의 균형외교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전쟁이 일어나면 어버이의 나라 미국이 다 알아서 막아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데.

 

백성이 다 아는 걸 왕과 신하들이 왜 모를까. 명분은 허울이고 이익이 본질인 것이 전쟁임을. 러시아가 그렇고, 중국이 그렇고, 미국과 일본 또한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음을. 선거에서 이기고 자신들의 패거리가 다시 집권할 수만 있다면, 전쟁 아니라 전쟁 할애비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만백성의 눈에 빤히 보이는 상식이 왕과 신하들의 눈에는 왜 보이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