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판관 포청천(包淸天)’은 권력에 굴하지 않은 중국 북송의 명신 포증(包拯)의 생전 일화를 소재로 하는 사극이지요. 수십 년 전부터 우리 국민을 사로잡았던 드라마는 버전을 달리하면서 지금도 유선방송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어요. 법치(法治)의 기본인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너무나 안 지켜지고 있는 세상에서 포증의 속 시원한 “작두를 대령하라!”는 호령이 오래도록 시청자의 기억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군요.
드라마 장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소위 나라의 최상급 권력자인 황족(皇族)의 범죄까지도 가차 없이 법대로 처단하는 판관 포증의 서슬 퍼런 처결이에요. 황족에게는 용(龍)작두, 관리등급에는 호(虎)작두, 일반 백성에게는 개(犬)작두를 동원하는 즉결처분 형식의 작두형이 박진감을 더해주지요. 끔찍하지만, 판결과 동시에 작두를 열어 곧장 사형에 처하는 장면은 엄정한 법치에 목마른 민심을 흔연히 적셔주는 대목이에요.
민주주의가 만개했다는 이 시대에 이 나라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법치가 확립돼 있다고 믿을만한 근거는 과연 충분할까요? 요즘 TV 매체에 등장하는 변호사들을 비롯한 법률가들의 활약이 크게 늘었어요. 예전부터 여의도에 진출해 금배지를 다는 사람들 가운데 법률가들이 많기는 했죠. 국회가 입법기관이다 보니 법 전문가들의 진출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게 바로 하고한 날 쓰레기통만 뒤져서 정적들을 공격할 지난 허물만 떠들어대는 3류 정치가 만연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방송 논객으로 등장하는 변호사들의 말을 듣다 보면 ‘법’을 소재로 별별 해괴한 궤변과 억지 논리로 먹고사는 이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정치집단과 연결된 변호사들이 나오는 설정에서는 감동적인 시시비비 정신은커녕 편 먹고 지어내는 현란한 편견들만 난무하지요. 그런 장면들이 ‘법’에 대한 인식을 현저히 오염시키고 있어요. “법이 소설보다도 더 ‘소설적’이더라”는 말이 헛말로 들리지 않는 요즘이에요.
다양한 해석이 붙을 수 있지만 ‘법꾸라지’의 뜻은 법 지식을 이용해서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지도자급 범죄자들을 일컫는 말 정도로 설명이 가능할 거예요. 그런데, 요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가히 ‘법꾸라지 천국’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고약한 범법 행위가 드러나 국민 정서를 어지럽히던 자들도 고급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여 풀려나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아요. 고액 변호사를 끼는 자들만 무죄 방면되는 사회가 우리가 꿈꿔온 정의 사회일 수는 없는데 말이죠.
돈이나 권력이 있으면 뭘 해도 무죄인 야만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요? 법치를 언제까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영역 안에 천덕꾸러기로 던져둘 건가요? 이 나라에 포청천의 기상은 아주 사라졌나요? 까무잡잡한 얼굴로 죄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호통을 치는, 진정한 판관 포증의 모습이 새삼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