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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체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문송합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한 공무원에게 들었던 말이다.

 

당시 미르재단과 케이(K)스포츠재단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문체부가 여론의 융단폭격을 받을 때다.

 

여기에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당시 문체부 내 분위기는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이 무렵 문체부 직원 한 명과 서울 모처에서 저녁 자리를 가졌다. ‘블랙리스트’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그는 툭 이런 말을 꺼냈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원래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의미인데, 요즘은 ‘문체부라 죄송합니다’래요.”

 

이어 그는 “(지원 배제 명단 같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팔길이 원칙(정부는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이 왜 안 지켜지는지 모르겠다”며 고개 저었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씁쓸하게 웃으며 “문송하다”는 말을 뱉던 그 직원의 표정이 오륙 년이 지난 지금 떠오른 건 4일 문체부가 낸 보도자료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만평 ‘윤석열차’가 화제가 되자 문체부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행사 취지에 어긋난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히 경고하며 신속히 관련 조처를 하겠다”고 했다.

 

그 조처는 ‘후원 명칭 사용 금지’ 검토다. 문체부는 “만화영상진흥원이 부천시 소속 재단법인이지만, 국민 세금인 정부 예산 102억 원이 지원되고 있고 공모전 대상은 문체부 장관상으로 수여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행사의 후원 명칭 사용 승인을 할 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승인사항 취소’가 가능함을 함께 고지했다”며 “해당 공모전의 심사기준과 선정 과정을 엄정하게 살펴보고 관련 조처를 신속하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처는 놀랍도록 신속했다. 첫 보도자료가 나온 지 하루도 채 안 지나 “승인사항 위반이 확인됐다”며 “이에 따라 엄격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같은 문체부의 조처에 대한 비판은 웹툰협회가 신랄하게 꼬집어주었기에 그들의 말로 대신한다.

 

“문체부는 ‘사회적 물의’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를 핑계삼아 노골적으로 정부 예산 102억 원 운운하며 헌법의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뒤에서 몰래 진행하다가 관련자들이 사법 단죄를 받은 ‘블랙리스트’ 행태를 아예 대놓고 거리낌 없이 저지르겠다는 소신발언(?)은 실소를 넘어 경악할 지경이다.

 

주무부처가 백주대낮에 보도자료를 통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분야엔 길들이기와 통제의 차원에서 국민세금을 제 쌈짓돈 쓰듯 자의적으로 쓰겠다는 협박이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웹툰협회가 4일 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입장문 중.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표현과 창작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을 받자 “문체부가 문제 삼은 것은 해당 작품이 아니라 순수한 미술적 감수성으로 명성을 쌓은 중고생 만화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만든 만화진흥원”이라고 반박했다.

 

되묻고 싶다. 대체 무엇을 그려야 ‘순수’인가. 23회의 역사 깊은 공모전을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만든 건 정말 한국만화진흥원인가. 오히려 ‘엄중 경고’, ‘후원명칭 중지’라며 논란거리로 키운 문체부 아닌가. 문체부의 과잉 대응으로 ‘윤석열차’가 국감 현안이 되면서 더 화제가 되지 않았나.

 

문체부가 왜 ‘문송’할 일을 스스로 또다시 만드는지 모르겠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을 검열해 지원을 중단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덮었던 게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닌데 벌써 말이다.

 

아무래도 문체부의 시간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복고가 유행이어도 이런 것까지 따라할 필요는 없는데….

 

[ 경기신문 = 유연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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