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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자,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86. 아웃핏 - 그레이엄 무어

 

넷플릭스에 올라 있는 ‘아웃핏’을 보는 건 기대를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이 영화를 보는 당신은 오프닝을 지나치면서 ‘설마 이게 끝까지 이러지는 않겠지’라는 의구심을 살짝 갖게 된다. ‘장르는 갱스터 영화라고 했다. 그러니 더욱더 영화 끝까지 공간 하나에서만 끝나지 않겠지.’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카고 어느 골목 끝에 있는 주인공 레오나드(마크 라일런스)의 양복점 안에서 시작해서 양복점에서 끝이 난다. 바깥이라곤 레오나드가 출근하고, 마지막에 자신의 오랜 일터를 떠날 때의 양복점 문밖이 전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올곧이 세트 촬영 하나로 이야기를 꾸민 셈이다.

 

영화 ‘아웃핏’의 로그 라인은 이렇게 돼 있다. ‘시카고에 자리 잡은 영국인 양복점 명장이 갱스터들과 엮이면서 겪게 되는 위험한 생존 게임을 다룬 영화.’ 그래서 으레 그렇듯이 총기 난사 장면이 비교적 발레를 보는 마냥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른바 이런 류의 갱스터 영화가 보여주는 ‘총알 발레’의 향연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총알 발레라는 용어는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이후 나왔다. 총격 신이 마치 한 편의 발레 무대를 보는 마냥 역설적으로 아름답고 부드럽게 묘사됐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총격 신을 슬로 모션으로 처리한 데서 비롯됐다) 그 기대치를 벗어난다. 그런 총싸움 따위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총격 장면이 필연적으로 벌어지긴 한다.

 

영화 속에서는 두 사람이 죽는다. 그리고 그 사건은 은폐되고 사건의 해결 과정은 치밀한 두뇌게임에 의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이 영화는 ‘시카고 갱단’이란 말과 싸움에 방점이 찍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 게임’이란 어구에 강조점이 찍혀 있다. 재단사 레오나드는 두 갱단이 조직 싸움 사이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그가 살아난다면 어떤 재능 때문일까.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었나.

 

제목의 아웃핏은 옷, 의상, 복장을 말한다. 우리가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재단사와 재봉사의 차이이다. 그건 마치 제빵사와 제과사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인공 레오나드는 자신을 재봉사(taylor)라 부르는 사람에게 자신은 재단사(cutter)라고 강조한다.

 

재단사는 옷을 입는 사람의 직업, 외모의 특성, 캐릭터, 부(富)의 정도에 따라 치수를 재고, 어디를 강조하고 어디를 뺄지를 결정하며 완벽하게 옷과 사람이 한 몸이 되도록 의상의 구조를 짜는 사람이다. 재봉사는 그렇게 재단된 천을 재봉질하고 뜯고 꿰매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둘 다 없으면 안 되지만, 재단사의 위치가 약간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때는 두 일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재단은 좀 더 창조적이고 재봉은 다소 기술적인 일에 머무르는 경우에 해당한다.

 

 

주인공 레오나드는 재단사이다. 물론 재봉 일도 겸하지만 (배경이 1959년이고 전후 경제 시스템이 다시 짜일 때인 만큼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을 테니까) 자신은 늘 스스로를 재단사라고 생각한다. 재단사는 나름 머리가 비상하되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말하는 것,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고 배려해 주는 사람이다. 당연히 눈치가 빠르고 생존력이 강하다. 한 명의 고객에게만 집중하면 결국 단 한 명의 고객도 유지할 수 없는 직업이 이런 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장을 다 고려하고 절충하되 어떤 때는 양쪽에 대해 알고 있는 약점을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태세가 돼있는 사람들이다.

 

레오나드는 선하고 조용한 인물이지만 결국 그가 어떤 생존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점차 만천하에 공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폭력의 능력이 아니다. 세상에서 살아남는 자는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지 힘세고 용맹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레오나드의 양복점은 시카고 주류 갱단이 사용하는 일종의 돈세탁 장소이다. 곳곳에서 거둬들인 자릿세를 포함해 각종 이권으로 거둔 수익금이 이쪽으로 모이면 갱단 두목의 아들 리치(딜런 오브라이언)와 두목의 오른팔 프랜시스(조니 플린)가 직접 수거해 간다. 매일매일 이 일은 반복적으로 진행되며 레오나드와 그의 여자 점원 메이블(조이 도이치)은 보고도 모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며 살아간다. 이 갱단의 두목은 레오나드의 오랜 단골이다. 레오나드 역시 그의 보호 하에 장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두목은 레오나드가 런던의 세빌로 거리 출신의 재단사임을 인정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 갱단의 골치는 라퐁텐이라는 이름의, 이 거리의, 일종의 원주민 조직이다. 아들 리치와 그의 파트너 프랜시스는 수거하는 돈들 사이에 아웃핏(미 전역 갱단을 연결하고 이견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일종의 감시위원회)의 소인이 찍혀 있는 봉투를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는 녹음용 카세트테이프가 들어 있었으며, 그 테이프에는 그간 FBI가 자신들의 조직을 감청하고 도청한 내용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조직 내 누군가 밀고자가 있고, 그의 도움으로 FBI는 수사 활동을 해왔는데 FBI 내부에도 첩자가 있어 도청 테이프를 한 부 복사해 다시 조직에게 알려 주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직 내 밀고자는 이 테이프를 상대 조직인 라퐁텐에게 돈을 받고 팔려고 하는 상황. 리치와 프랜시스는 이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기계(녹음기)를 구하는 대로 내용을 재생해서 도대체 밀고자가 어디에 도청 장치를 한 것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한다. (1959년에는 비교적 소형의 카세트테이프가 막 발명됐을 때이다. 이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레코더는 아직 대중화되지 못한 때이고 영화는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얘기는 복잡해진다. 음모는 세 가지 조직 사이에서 떠다닌다. 시카고 갱과 라퐁텐 조직 그리고 FBI. 이 세 조직 사이를 오가며 줄다리기를 하는 인간, 밀정, 밀고자, 첩자는 누구인가. 혹시 프랜시스인가. 가만히 보니 리치와 메이블 사이도 심상치 않다. 그렇다면 점원 메이블인가. 아니면 설마 재단사인 레오나드일까.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등장인물들 각각이 동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레오나드는 아무래도 런던에서의 행적이 수상쩍다. 그는 단순한 재단사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혹시 FBI 요원이 아닐까.

 

리치도 심상치 않다. 그는 조직의 제2인자이지만 거리에서 아버지가 데려 온 프랜시스에게 밀리는 상황이다. 그는 좀 심약한 편이기도 하다. 거리에서 라퐁텐 조직원에게 총을 맞기도 한다. 혹시 프랜시스를 제거하기 위해 리치가 계략을 꾸미는 것은 아닐까.

 

프랜시스는 당연히 동기가 충분하다. 그는 조직에 충성을 다하고 있지만 (보스를 위해 총을 6발이나 맞기까지 했다) 리치가 권력을 잡으면 토사구팽 당할 것이 뻔한 것을 안다. 일찍 손을 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메이블은 메이블대로 꿈이 많은 여자이다. 그녀는 언젠가 이 살육의 거리를 떠나 파리에 가서 정착할 생각을 갖고 있다.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과거 갱단 하수인이었다가 살해당했다. 모두들 동기가 있다. 과연 밀고자는 누구인가. 그보다는 과연 이중에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영화 ‘아웃핏’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아니 그냥 한 편의 연극을 통째로 세트화해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약 3막 8장 정도로 구성돼 있는 연극인 셈이다. 다분히 셰익스피어적인 연극을 아가사 크리스티 버전으로 극화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만큼 스케일보다는 배우 한 명 한 명의 철저한 개인기와 완벽한 소품과 의상, 분장, 세트 등 미장센의 디테일에 절대적 충일감을 가한 작품이다.

 

영화가 자본과 규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런 미학적 디테일에서 비롯된 것임을 유감없이 증명한 작품이다. 인간은 얼마나 지적이며 동시에 그 마음속에는 누구나 위선의 어둠과 이중, 삼중의 과거를 지니고 있는가를 보여 주기도 한다.

 

당신은 영화의 어느 부분쯤에서 밀고자를 찾아낼 것인가. 영화를 보고 있으면 리치의 애인인 척 메이블이, 사실은 프랜시스와 함께 ‘짜고 치는 고스톱’ 한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 가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거기까지라도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런 류의 범죄 스릴러를 꽤 많이 본 축에 속한다. 쓸데없는 영화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번 주는 지적인 소품으로 영화적 쾌감을 느껴 보시기를 바란다. 자, 누군가 밀고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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