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외국인 최초로 무형문화재인 가야금 산조(散調) 전수자다. 미국 알래스카 출신, 본명은 Jocelyn Clark. 이 이름에서 한국이름 '조세린'이 나왔다. 그 이름을 "고향 떠나(趙) 이역만리 타향살이(世)에서 중국 황제시대에 신수(神獸)로 여겨졌던 상서로운 동물(麟)이 될 팔자"라고 풀어줬다. 자칭 '알래스카 조씨'라 한다. '얼음 氷, 북쪽 北, 새鳥'를 합하여 옥편에 없는 글자를 만들기도 했다. 확고한 정체성을 자기존엄성의 전제조건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1970년생 개띠. 현재 대전 배재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다.
그를 만난 건 최근 모 일간지에 실린 그의 칼럼을 감동적으로 읽은 것이 계기였다. 내용도, 문장도 특출하였다. 뿐만 아니다. 그는 음악을 우주 운행질서의 일부로 이해하고 연주하는 큰 예술가다. 그도 가야금 뜯으며 손가락이 멍들고 피흘리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고행은 멈춤이 없다. '천류불식'(川流不息)의 운명이다. 개천이 쉬지 않고 흘러가야만 강에 이르고, 마침내 대해(大海)에 도달하는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그는 천재였다. 서너 살에 이미 바이올린, 클라리넷을, 열살 전에 오보에와 피아노를 연주했다. 일본에 가면 일본어, 중국 가면 중국어를 빠르게 익혔다. 독일어,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그의 우리말은 99점. 가야금 병창에서 부르는 노랫말들은 이백 년 전 가사인데다, 중국의 고대신화와 당시(唐詩) 등이 줄거리인 문학이다. 그는 그 배움의 과정에서 느낀 문제의식ㅡ가야금 병창 관련ㅡ으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에서 고교를 다니면서 '고토'를, 중국 난징예술대학으로 유학가서는 '쟁'(箏)과 서예를 배웠다. 그리고 1992년에 국립국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서 가야금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스물 둘 꽃다운 청춘이었다. 고토와 쟁은 각각 그들의 가야금으로 생각하면 된다. 쟁이 둘의 원조다. 그는 가야금을 만나서 힘들지만 깊이 행복한 연주자가 되었다. 가야금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여러 종류의 소리로 말하는 생명체다.
역병이 창궐하기 전에는 혼자서 장장 9시간 동안 지속되는 국립극장의 판소리 완창공연을 찾곤하였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진도씻김굿도 서울공연 할 때마다 찾아가서 긴 시간 조상들과 특별한 스승들의 천도를 빌었다. 예외없이 만석이었다. 그 '비합리적인, 이상한, 할 일 없는' 관객들이 실은 21세기에 황금기를 구가하는 한국문화(KㅡCulture)의 듬직한 바탕이다. 그 역사와 전통, 즉 근본없는 딴따라의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앞장서서 국악을 홀대한다. 정확히 말하면 학대다. '교실에서 국악의 설 자리'를 없애려는 거다. 씨를 말리겠다는 눈초리다. 혹시 미친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든다. 조교수는 말한다. "나는 국악에 인생을 걸었다. 온 세상 인산인해의 외국인들이 선망하는 한국문화의 근본, 그 국악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배척하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학교에서 1)영화로 읽는 동아시아 종교철학, 2)동아시아의 미학, 3)국악에서 K-Pop까지, 4)영화를 통한 격동의 동아시아 근대사 등 네 과목을 강의한다. 내년 2023년 故성금연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가야금 산조 음반을 낼 예정이다. 전북 무형문화재 40호인 지성자 선생(성선생의 딸)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 후 가야금 병창에 매진할 계획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