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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의 광고로 세상 읽기] ⑩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섹스어필 광고

 

 

1.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를 빌리자면, 성(性)에 대한 관심은 우월적 종족 보존을 위한 DNA의 절대 명령입니다. 거부할 수도 뿌리칠 수도 없는 유혹이지요. 사랑과 섹스 이야기가 세계 각국의 신화와 전설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폼페이(Pompeii)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처에서 융성했던 환락도시였습니다. 그런데 A.D. 79년 8월 24일 비극이 닥칩니다. 근처의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한 거지요. 거대한 용암과 유독 가스가 도시를 덮칩니다. 수만의 생명이 불길과 화산재 아래 묻혀버렸습니다. 이 도시는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1592년 밭을 갈던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됩니다. 본격적 유적 발굴은 174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전성기의 문화와 생활풍속이 기적처럼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요.

 

2018년 폼페이의 레지오 브이(Regio V) 유적지구에서 새로운 프레스코 벽화 하나가 발굴됩니다.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발견이었지요. 그리스 신화를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천하의 난봉꾼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스파르타의 여왕 레다를 유혹하는 이야기. 이때 레다가 임신을 해서 알을 낳게 되는데, 그 알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절세 미녀 헬레나가 태어나게 됩니다.

 

2천 여 년을 훌쩍 뛰어넘어 모습을 드러낸 연인의 모습을 보세요(그림1) . 관능적 포즈로 의자에 걸터 앉은 레다의 다리 사이에 고개를 치켜든 백조가 애무 동작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절로 `눈길이 끌립니다. 다른 주제의 그림이었다면 흥미와 관심이 그토록 크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것이 섹스어필의 힘입니다.

 

 

 

 

광고에서도 성적 소구(sex appeal)가 빈번히 사용됩니다. 주로 섹시한 인간의 몸이나 포즈, 상징물 등을 보여주고 소비자 반응을 유발시키는 거지요. 하지만 이 표현 방식은 부정적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미디어 학자 윌슨 브라이언 키는 섹스어필 광고가 ‘성적대상화를 통해 인간의 잠재의식을 자극하는’저열한 설득기법이라 직격합니다.

 

무엇보다 광고 효과 측면에서 브랜드 기억도가 낮거나 구매의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가 빈번히 제출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의를 성적 요소에만 집중시킴으로써 광고 제품에 대한 인지와 태도변화를 가로막는다는 겁니다. 이른바 방해가설(distraction hypothesis)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에서 섹스어필이 즐겨 등장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이보다 더 강렬하고 집중적인 주목을 일으키는 무기가 없기 때문이지요.

 

광고가 태동하고 발전한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광고표현이 기독교적 도덕률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20세기가 열리기 전까지 섹스어필 광고가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 같은 한계를 뚫고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창조된 최초의 성적 소구가 있습니다. 역사상 넘버원 여성 카피라이터로 손꼽히는 헬렌 렌스다운 레조(Helen Lansdowne Lesor)의 우드버리(Woodbury) 비누 광고였습니다.

 

1910년 탄생한 이 작품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알론조 킴볼(Alonzo Kimball)이 그렸습니다. 옅은 갈색 머리에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젊은 남자의 반쯤 가려진 얼굴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헤드라인은 더욱 묘합니다.

 

“만지고 싶은 피부”.

 

이어지는 카피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품 구입동기를 자극합니다. "당신도 다음 순서에 따라 (우드버리)를 사용하기만 하면 그녀의 매력을 당신 걸로 만들 수 있어요(You, too, have it's charm if you will begin the following treatment tonight)“. 문장의 백미는 쉼표 다음에 들어간 ‘당신도(You, too)’입니다. 어떤 여성이라도 우드버리 비누를 사용하기만 하면 광고에 나온 여인처럼 남자를 푹 빠져들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인 거지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명확한 성적 암시가 담겨있습니다. 멋진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은 아가씨치고 누가 이런 유혹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이 광고는 동일한 헤드라인에 비주얼만 살짝 바꿔서 계속 반복 집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드버리 비누는 8년 만에 매출액이 무려 10배나 늘어나는 대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3.

섹스어필이 광고에 체계적으로 등장한 것은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부터입니다. 주인공은 엘리엇 화이트 스프링스(Elliott White Springs)였습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지식인이자 제 1차 세계 대전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전쟁영웅이었지요.

 

전쟁이 종료되자 스프링스는 오랜 가업이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스프링스 면직물 회사> 경영자로 복귀합니다. 이 회사는 엘리엇의 선대 시절 미완성 직물인 회색 면포(grey cloth)를 만드는 작은 규모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사업이 확장되어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즈음에는 미국 3위의 섬유기업으로 부상합니다. 표백 가공된 시트 천은 물론 여성 언더웨어 등의 다양한 면제품을 제조 판매했지요.

 

스프링스는 창조적 재능이 번뜩이는 인물이었습니다. 광고 카피와 비주얼 아이디어를 대행사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떠맡을 정도였지요. 전후 호황 국면이 이어지고 제품 수요가 급증하자 그는 과감한 도전을 결심합니다. 자사의 면제품 광고에 섹시한 여성을 등장시킨 거지요.

 

 

 

 

1948년 첫 집행된 이 광고는 세상에 파문을 던집니다. 남성 파트너와 춤을 추다가 턴(turn)을 하는 금발 미녀. 그녀의 스커트가 위쪽으로 한껏 솟구친 것이 보이시지요? 팬티를 입은 하체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겁니다. 수준급 일러스트레이션과 우아한 레이아웃이 노골성을 완화시켜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자극적입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그러한데, 74년 전에는 보는 이의 심장이 덜컥할 정도였을 겁니다.

 

스프링스는 섹스어필 광고를 몇 년에 걸쳐 구상했다 합니다. 문제는 당대의 미국 사회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보수적 기독교 윤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그가 만든 광고작품을 실어주겠다는 매체 자체가 없었습니다. 표현 수위가 너무 높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스프링스가 쓴 원래 카피와 비주얼의 대폭 수정을 요구하거나 게재 자체를 아예 거절했던 겁니다.

 

그의 시도는 1948년에 가서야 성공하게 됩니다. 광고전문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가 스프링스의 광고를 처음으로 받아준 겁니다. 이듬해 잡지 <리버티 앤드 룩(Liverty and Look)>에 두 번째 광고를 게재했을 때 마침내 폭풍 같은 반응이 일어납니다. 미국 전역에서 광고 복사본을 발송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 거지요. 광고가 실린 잡지는 가두(街頭)에서 완판을 기록하고 판매부수가 18만부로 급상승합니다. 이 성공을 기점으로 세상의 편견을 정면으로 깨트리는 야심찬 도전이 시작됩니다. 10년에 걸친 섹스어필 캠페인이 착착 진행된 것이지요. 그 결과 스프링스 밀스는 브랜드 인지도와 매출액에서 동종 업계 최고를 기록하게 됩니다.

 

 

4.

 

섹스어필 광고가 완전히 꽃피어난 것은 1990년대였습니다. 수십 년 간 억눌렸던 에너지가 분출하듯 도발적 캠페인들이 연이어 발표됩니다. 배경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화된 클러터(clutter) 현상 때문입니다. 클러터란 매스미디어와 광고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수용자의 주의집중을 방해하는 메시지 혼잡상태를 말합니다. 출퇴근의 러시아워 때 좁은 차선으로 한꺼번에 차량이 몰리는 모습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한정된 소비자를 두고 주목을 이끌어내기 위한 어마 무시한 쟁탈전이 벌어진 거지요.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주목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섹스어필 광고를 대거 소환시킨 겁니다. 이전 시기의 성적 소구는 당대의 규범적 가치기준을 과하게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 불어 닥친 광고 주목율 경쟁은 더 이상 그런 눈치 볼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전쟁 속에서 모든 금기가 파괴됩니다.

 

대표적 사례가 1995년의 캘빈클라인 진 광고입니다(그림 4). 금발의 틴에이저가 다리를 벌린 채 누워있습니다. 진 소재의 미니스커트 아래 흰 색 속옷이 살짝 드러나 보입니다. 여자 아이의 시선이 카메라 너머 독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네요. 심지어 왼 손가락으로 늘어뜨려진 금발을 잡고 입술로 빨고 있습니다. <플레이보이 잡지> 못잖은 수위입니다.

 

 

 

TV광고와 연동되어 대대적으로 런칭된 이 캠페인이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지요.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라는 강력한 비판을 했습니다. 가톨릭교회 등에서 격렬한 항의가 제기되었고 FBI가 아동포르노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벌일 정도로 파장이 커졌지요.

 

광고를 하나 더 보시지요. 원더브라(Wonderbra)입니다. 푸시 업 타입의 이 브래지어는 특수 와이어가 아래에서 위로 받쳐줘서 가슴을 더 커보이게 하는 특징이 있지요. 처음에 캐나다에서 발명되었지만 판매가 그리 활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이 광고를 통해 재런칭(re-launching)을 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90년대를 풍미한 체코 출신의 슈퍼모델 에바 헤르지고바(Eva Herzigova)가 모델입니다. 매스미디어들은 이 광고를 ‘100퍼센트 관능 그 자체’라고 평가했습니다. 검정 색 브래지어와 망사 팬티만 걸친 반라의 모델, 그리고 “헬로 보이스(Hello Boys)”라는 유혹적 카피가 불러 일으킨 시너지 효과 때문이었지요.

 

 

 

2018년 발행된 광고 전문지 <캠페인(Campaign)>에서 지난 50년간 나온 최고의 광고 중 하나로 뽑힌 이 작품의 인기는 그야말로 선풍적이었습니다. 옥외광고로 처음 노출되었는데, 광고판을 보기 위해 멈춰선 차들 때문에 일대에 교통정체가 일어날 정도였으니까요.

 

 

5.

섹스어필의 전성기는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광고 메시지 혼잡현상을 극단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을 통해 주목과 관심을 획득하려는 필사적 노력이 경주되고 있지요. 날이 갈수록 섹스어필 광고의 충격성(impact)이 강해지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제 웬만한 자극에는 꿈쩍을 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또 하나의 광고가 등장합니다. 이브생로랑의 오피움(Opiunm) 향수 포스터입니다(그림 6). 당대 최고의 인기 모델 소피 달(Sophie Dahl).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은 로잇펠드(Roitfeld)가 디자인한 황금 액세서리와 끈으로 된 하이힐 뿐. 어두운 보라색 벨벳 위에서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누워있는 모델의 무릎 위에 브랜드 로고가 살짝 올려져있습니다.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레이아웃입니다.

 

이 작품도 발표되자마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킵니다. 대중의 관음증적 흥미를 정면으로 자극한 거지요. 역사 상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한 광고 포스터란 평가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광고심의를 담당하는 영국 ASA(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를 향해 무려 948건의 공식항의가 접수되었습니다. 마침내 포스터의 게재 금지명령이 내려졌지요. 여성을 한낱 성적 도구로 삼고 여성성의 가치를 폄하하는 노골적 성차별 광고라는 비판 때문이었습니다.

 

 

 

 

게재는 금지되었지만 이 공격적 섹스어필 광고의 영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산됩니다. 심지어 순수 예술 분야에서 모방작이 나올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 화가 세실리아 클레멘트손(Cecilia Ulfsdotter Klementsson)의 회화작품을 보시지요. 포스터에 등장한 모델을 남자로 바꾼 다음, 똑같은 포즈를 취한 그림을 그린 겁니다. 더욱 적나라하고 더욱 사실적으로.

 

 

 

 

21세기에는 미디어 플랫폼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광고의 모습 자체가 바뀌는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표현 방식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섹스어필 광고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제 생각에, 사랑과 성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능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소구방법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봅니다. 오히려 보다 자극적이고 세련된 구조로 진화해 가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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