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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온고지신] 혼다 소이치로

 

"사장님, 2-3일씩 수시로 철야근무하는 것은 제게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신혼의 아내에게 연락할 길이 없어 상 차려놓고 저를 기다리다가 밥도 못먹고 잠드는 일이 너무 잦습니다. 오늘은 퇴근시켜주십시오."

 

일반 가정집에 전화가 없을 때였다. 다음 날 전화가 생겼다. 혼다기연의 엔진개발 핵심 기술자였던 야기 시즈오씨의 젊은 날 추억 한 토막이다. 선생은 일을 지시하고 집에 가지 않고 관련팀을 돌며 젊은 기술자들과 밤을 세운다. 

 

수시로 '터무니 없는' 목표를 제시하고, 그 성취를 위하여 모두가 달려들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끝내 성공한다. 그 불가사의한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신뢰는 두터워지고 존경심은 높아진다. 3류들은 80점짜리를 이루어놓고 만족해하며 파티를 벌인다.

 

선생은 스스로 "성공이란 99%의 크고 작은 실패 끝에서 거두는 결실이며, 1%는 강한 정신력"이라고 역설한다. 혼다인들은 선생의 신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특별한 집단이다. 이는 주입시켜 되는 일이 아니다. 월평균 잔업 300시간의 기술자들 가운데 노동강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1960년, 세계 최초로 연구소를 별도법인화 했다. 생산판매와 연구개발을 분리한 뒤, 주로 연구소에서 기술자들과 함께 했다. 매출액 5%를 연구법인으로 보낸다. 혼다의 RND 예산총액은 토요타 보다도 더 많다. 2022년 기준, 매출 150조원, 종업원수 20만명이 넘는다.

 

이 회사의 기술자들은 각각 엔진이건 크랭크샤프트건 소음이건 한 분야만 파고들어 세계 최고가 되었다. 직급도 없다. 모두 연구원이다. 청구예산은 대부분 존중되어 집행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만족도 높은 기술자들은 혼다연구소 사람들이다.

 

모두가 신바람 나서 일하는 사풍(社風)은 '오야지'ㅡ혼다맨들은 선생을 이렇게 부른다. 선생도 그 애칭을 좋아했다ㅡ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액이다. 

 

신입사원들은 첫날 "멸사봉공'(滅私奉公)하지 말라. 자신을 위해서 일해야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선생의 당부를 듣는다. 애사심과 주인정신을 강조하면 실은 위선과 아부가 득세한다.

 

 

혼다 소이치로는 1906년 시즈오카 현에서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겨우 마치고 15세에 도쿄로 나가서 자동차 수리점에 취직한다. 6년만에 당시 세상에 나와 있던 자동차 엔진은 모두 뜯어서 고치고 재조립하는 숙련공이 되었다.

 

마흔 살(1946년)에 100만엔으로 혼다기술 연구소를 차린다. 2년 후 평생 동지인 후지사와 다케오와 의기투합, 1973년 함께 은퇴할 때까지 환상적인 콤비로 동업했다. 회사에 자식들 끌어들이지 않았다. 학벌을 무시하고 오직 끈기와 실력을 존중했다. 은퇴 후에는 최고기술고문 직함으로 있으면서 사망할 때(1991년)까지 재단에만 관여했다. 

 

2륜차는 세계 1위, 4륜차는 세계 Top5의 실적을 달성했다. 1988년에는 F1 경기에서 16전 15승을 거두었다. 그 후 미국 유럽 회사들이 흥미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하여 F1에서 철수했다. 2015년, 마침내 그의 꿈이던 제트기까지 생산 판매하기에 이른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지 않은 도전이었다. 

 

'꿈의 힘', Power of Dream! 
혼다 소이치로의 신념이었다.

 

첨언:1990년대 국내 자동차업계에 일본 자동차업계 임원출신들을 영입하는 붐이 있었다. 우리 회장이 한 말이 생각난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가 혼다차 임원출신은 뽑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그들은 폐계 ㅡ알을 낳지 못하는 닭ㅡ다. 회사에 모든 걸 다 쏟아놓고 나와서 귀사에 줄 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30년만에 혼다 소이치로 선생을 다시 읽으며 그 말을 마침내 확실하게 이해했다.


네티즌 의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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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진
    • 2023-11-07 12: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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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rnd 예산을 함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나?
    우리 대통령은 연구 활동하는 과학자들이 연구비만 받아먹고 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근본 원인은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연구비도 줄여 윤석열 정권을 지지하여 줄 민생 쪽으로 배정하려는 것으로 보이나, 여타 다른 곳은 예산을 줄일 수 있겠으나 연구비와 국방예산은 줄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줄이겠다면 국회의원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에게 들어가는 예산이나 봉급부터 줄여 국민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 사너멀
    • 2023-02-11 12: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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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동적인글 읽을수 있어 기다리게 됩니다
    감동이예요 대단하십니다

  • 알토혼
    • 2023-02-08 16: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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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다’가
    ‘혼‘을 ’다‘해 회사에 헌신한다는 약어이네요 ㅎㅎ

  • 김일광
    • 2023-02-07 18: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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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 나에게 혼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이 글을 읽고 깊이 반성합니다.

  • 응혜
    • 2023-02-07 12:56:39
    • 삭제

    오세훈 선생님!
    큰 성공을 이룬 좋은 분들을 많이 소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아처럼 폭 넓게 생각 할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 아수움이 있습니다 .
    김재현

  • 귀로
    • 2023-02-07 11:25:59
    • 삭제

    정서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나라의 기업이고 기업인일지라도 좋은 점은 되새겨 보아야 할거 같습니다.

  • 晩雨
    • 2023-02-07 10: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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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박재수
    • 2023-02-07 0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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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 업계의 큰 그릇들은 대부분 완벽주의와 자기희생을 어느 한 켠에 두고 있다. 이런 대단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류의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런 면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극단적인 완벽주의와 자기희생이 먹히지 않은 지금의 시대에서 한번 쯤은 생각해 볼만한 가치라고 생각된다. 깊은 리서치와 문필로 한 인물을 새롭게 알게 해 준 필자에게 감사를 보낸다.

  • 난몽
    • 2023-02-07 08: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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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득히 잊었던 경영의 신..혼다 소이치로..최고의 경영이 남의 머리를 빌려 사업한다는 전설의 귀재...무릇 성공한 기업이 이곳 뿐이랴. 허나 머리는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것을 산출해 낸다는 것을 나이 육십이 넘어 깨닫는다. 아뿔싸 시간이 없다. 일깨워준 필자의 예리함에 항상 총명함의 근원이 어디인지, 그 깊이는 또 얼마인지 궁금하다.다음편이 새삼 기대된다

  • 공풍
    • 2023-02-07 08: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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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기면 더 강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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