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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마녀사냥의 숨겨진 의미

 

1.

정의연(정의기억연대) 관련 기부금 전용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속칭 윤미향 사건이다. 온 나라를 활활 불태운 마녀사냥, 그 불길이 사그라들고 팩트가 모습을 드러낸 게다. 늘 그러하듯 검찰이 장작에 기름을 붓고, 타오르는 광란의 불길 앞에서 언론이 칼춤을 췄다.

 

검찰은 보조금관리법 위반, 지방재정법 위반, 사기, 기부금품법 위반, 준사기, 업무상 배임, 업무상 횡령,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등 8개 혐의에 대한 기소를 감행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부는 이 중 7개 혐의에 무죄를, 10년 동안 1700만원을 가져다 썼다는 업무상 횡령 혐의에만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살펴보면 유죄판결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다대하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지출 항목에서 영수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등 회계관리 부실이 이유였다. 일반 기업에 비해 회계처리가 치밀할 수 없는 것이 시민단체의 불가피한 환경이다. 이런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세부 입증 자료 부실이라는 기계적 기준을 적용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1700만원이라는 금액이다. 해당 기간이 10년 동안이다. 간단한 나눗셈을 해보자. 1700÷10×12=14.1666. 즉 윤미향 의원이 10년에 걸쳐 한 달 평균 14만 천 6백원씩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판결이다. 기이한 일은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기간 동안 무려 1억 원 이상을 정의연과 시민단체에 기부했다는 것이다. 개인 수입으로 얻은 강연료, 책 인세, 상금(늦봄통일상, 의암주논개상) 등이다. 횡령혐의 금액보다 평균 5.9배의 돈을 매달 사회에 다시 되돌려준 셈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란 평가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2.

처음부터 많은 이들이 정의연 사태를 ‘드레퓌스 사건’에 비유했다. 악의적 목적을 품은 흑색선전이었다는 뜻이다. 확인되지 않은 검찰 발 루머를 극단적으로 부풀리는 허위 보도가 난무했다. 성급한 단정과 악랄한 조롱이 산처럼 높았다. 이런 눈먼 공격이 쌓이고 쌓여 윤미향이라는 이름 석 자에는 마침내 ‘희대의 악녀’라는 주홍글씨가 덧씌워졌다.

 

그렇게 진행된 사태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비극이 있었다. 2020년 6월 6일 ‘정의연 위안부 피해자 마포쉼터’의 손영미 소장이 검찰과 언론에 시달리고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우리 형법 126조는 검찰·경찰 등이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 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하는 것을 금지한다. 헌법이 규정한 무죄추정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같은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끝없이 흘러넘친 가짜 뉴스들. 이 어두운 증오의 불길이 선하디 선한 한 사람의 영혼을 태워버린 것이다.

 

함께 모시던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동그마니 남은 길원옥 할머니와 손 소장이 다정히 살아가던 ‘평화의 우리집’. 검찰은 (길 할머니 관련 준사기 혐의를 추궁하며) 이 사적인 공간을 2번이나 반복하여 압수수색했다. 온갖 언론사가 대문 앞에 카메라를 상주시켰다. 끊임없이 후레쉬를 터뜨리고 초인종을 눌러대는 압박을 가했다.

 

그 점에서 손영미 소장의 죽음은 검찰과 하이에나 언론, 인터넷과 SNS를 통틀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쏟아 부은 자들이 휘두른 광기의 결과물이었다. 분노와 절망이 얼마나 극심했을까. 정의연은 장례식을 치르면서 "언론의 촬영과 취재를 일절 금지하며 취재진의 출입을 금한다”는 피맺힌 공지를 내걸었다.

 

3.

윤미향과 정의연을 타격한 집단의 목적은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칼날이 향한 지점은 일치했다. 첫째, 윤미향이라는 활동가/정치인에 대한 인격살인이었다. 둘째, (더 본질적인 목적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정하고 그 근원을 오염시키기 위한 계획적 도발이었다.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결성된 것은 1990년 11월이다. 같은 해 8월 14일 일본군 성범죄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공개증언이 도화선이었다. 그 점에서 윤미향을 공격한 자들은, 그녀 개인을 넘어 지난 33년 간 위안부 할머님들과 정의연이 통과한 피와 눈물의 세월을 공격한 셈이다. 애타게 쌓아올린 ‘위안부’ 운동의 교두보를 흙탕물로 쓸어버리려 한 것이다.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대중을 선동한 자들. 뒤에 숨어서 그러한 진행을 지켜보며 웃던 자들. 이들이 구축한 프레임은 결국 ‘일본군 위안부 범죄’ 책임 추궁의 역사적 당위성을 희석시키는데 기여했다. 진보적 대중운동의 가장 약한 고리인 도덕적 문제를 치고 들어감으로써, 성노예제 피해자 인권회복을 위한 그 지난한 투쟁성과를 파괴시키려 한 것이다.

 

극우세력의 그 같은 합동 공세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골적, 공개적으로 추진 중인 강제징용 문제 해결 방식을 보라. 전쟁범죄 당사자인 일본기업의 책임을 면책시키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안이다. 하나같이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무산시키려는 시도다. 정의연 사태를 발화시킨 세력과 대일 굴욕 정책을 실행하는 세력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윤미향 의원에 대한 1심 판결이,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진정한 사죄 및 보상 요구를 다시 한 번 점화시키는 전환점이 되기를 희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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