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홉스 봄은 프랑스 혁명 이후 역사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구분해 서술하고,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규정했다. 21세기는 무슨 시대로 기록될까? ‘혼돈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중국이 띄운 풍선이 미국의 하늘에 나타나 소동을 빚었다. 지구 궤도에 무수히 많은 위성을 띄워 서로 속속들이 감시하고 있는 마당에 풍선까지 등장했다. 미국은 이 풍선을 전투기를 출동시켜 격추(?)시켰고, 미국 시민들은 환호했다. 기상관측용 풍선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은 미국 편을 든 한국에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의 쑨웨이둥 부부장이 2월 14일 정재호 주중 한국 대사를 만나 “한국 쪽이 시비곡직을 분명히 가려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공정한 판단을 내리길 희망한다”고 항의성 충고를 한 것이다. 시비곡직, 객관, 이성, 공정. 모두 철학적으로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하는 말들이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고 굽은 것과 곧은 것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객관, 이성, 공정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객관적이라는 것은 현상의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본질(진실)을 밝히는 것이요, 이성적이라는 말은 감정을 걷어내고 합리적 판단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이란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려내는 것이다. 맹자가 말한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시비곡직을 가려내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의미다. 요즘 말로 하면 합리적 이성이다. 그러나 인간은 제한적으로만 합리적이며,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 그래서 세 번 생각하고 말을 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풍선 논란’과 관련해서 보자면, 미국이나 한국의 반응은 주관적이고 감정이 앞서 있는 모습이다. 쑨 부부장은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객관성과 이성과 공정성은 정삼각형처럼 하나로 연결된 개념들이다. 시비곡직까지 포함하면 정사면체가 되겠다. 감정이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배제한 이성적 사유를 지향할 때라야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다. 객관은 의지적으로 주관을 멀리함으로써 그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자세를 견지해야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경지에 이르면 시비곡직은 자연스럽게 가려질 것이다.
이 개념들은 각자의 경험으로 터득하기는 불가능하다. 경험은 주관의 영역이다. 주관적 판단에서 벗어나려면, 동서양 철학과 인지심리학, 뇌신경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습과 꾸준한 수련을 필요로 한다. 이 분야의 지식은 교양인의 필수덕목이 되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학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걸 공부했다. 리버럴 아츠는 요즘 말하는 좁은 의미의 인문학이 아니라 융합적 교양과목들이었다. 21세기가 혼돈과 고통의 시대가 되지 않도록 이성을 회복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