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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기도내에 4.19 혁명기념탑 하나 없다니

지역 민중들의 반독재투쟁 잊혀지지 않도록 기념탑 세워야

  • 등록 2023.04.24 06:00:00
  • 13면

1960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혁명인 4.19혁명이 일어났다. 이승만 독재정권이 장기집권을 이어가면서, 부정부패와 억압정치는 점점 더 심해졌고 국민들의 생활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독재 정치에 대한 불만이 극심하던 시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조병옥이 사망했다. 1960년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따라서 이승만은 가만히 있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당시는 부통령도 있어서 대통령처럼 선거로 뽑았는데 이기붕이 출마했다. 선거결과는 이승만과 이기붕의 ‘압도적 승리’였지만 부정선거로 인한 결과였다.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부정행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폭력을 써서 입후보 등록을 방해하는가하면 유령유권자도 무더기로 나왔다. 관권을 총동원해 유권자들을 협박했고, 3~5인조 공개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부정개표, 투표권 강탈 등 미증유의 불법이 총동원됐다. 이에 따라 자유당 후보의 득표율은 95~99%나 됐다. 독재정권 스스로도 너무하다 싶었는지 알아서 하향조정, 이승만 85%, 이기붕 73%라고 발표했다.

 

민중들의 항거가 시작됐다. 3월 15일 마산(현 창원시)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경찰의 실탄발포로 최소한 8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총상을 입었다. 꽃다운 열일곱 살의 소년 김주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진 채 바다위로 떠 오른 것도 이때였다. 4월 19일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대규모화됐다. 경찰과 정치깡패들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190명 가까이 숨지고 6000명 넘게 부상을 당했다.

 

이에 앞서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고등학생들이 교문을 뛰쳐나왔다. 장면 부통령 후보의 대구 선거 유세 참석을 막기 위해 일요일 등교를 지시하자 학생들은 부정선거에 반발해 거리로 나섰다. 2.28 대구민주운동이었다. 이후 학생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서울, 대전, 수원 등지에서, 선거 당일인 3월 15일은 마산에서 학생시위가 벌어졌다. 4.19는 들불처럼 번졌고 종신집권을 꿈궜던 이승만의 야욕은 종지부를 찍었다. 세월이 흐르니 그런 그를 국부로 섬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기한 것처럼 수원은 일찌감치 독재에 저항해 학생들이 일어섰다. 1960년 3월 10일 수원농고 학생 300여 명이 “학원에 대한 정치적인 간섭을 배격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이승만 정부의 정치 간섭을 반대했고, 이후 서울농대생 1000여 명이 동참했다. 수원농고생들의 시위는 전국에서 3번째로 일어난 4.19 혁명 학생의거였다. 4.19를 전후해서 수원시내 학생과 시민의 시위는 계속됐다.

 

그럼에도 경기도내에는 웬만한 지역마다 있는 4.19 혁명기념탑 하나 없다. 4.19 혁명유공자 131명이 생존해 있음에도 말이다. 경기신문(19일자 7면)에 따르면 수원시가 지난 2020년 장안문 일대, 서호공원 등 후보지에 기념물 건립 타당성 조사를 했지만, 기준에 못 미치거나 코로나19 확산세로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4.19민주혁명회·4.19혁명공로자회 경기지부 등 보훈단체가 올해 4.19 기념물 건립 사업을 재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마땅하고도 옳은 일이다. 김재우 4.19민주혁명회 이사의 말처럼 더 늦기 전에 도민들이 4.19 혁명에 대한 역사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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