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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모욕하고 조롱하는 자들

1.
커뮤니케이션 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에서 사람을 설득하는 6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가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다. 사람들은 자기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주변의 다수가 선택하는 방식을 살핀다는 거다. 당신도 경험이 있으실 거다.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사람들이 우르르 길을 건너면 자기도 모르게 차도에 발을 내딛은 적이.    

 

삼인성호(三人成虎)란 어구도 유사한 심리적 기저에서 나온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데도 여럿이 한 목소리로 우기면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거다. 일종의 어거지 수법인데, 나는 이걸 가장 열심히 활용하는 정치세력이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실업급여’ 폐지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7월 12일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위장이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를 운운한 것이다. 그는 공청회 후 브리핑에서 최저임금의 80%인 현재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폭탄 발언을 던졌다. 

 

실업(失業)은 노동하려는 뜻과 능력이 있음에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실업급여는 이렇게 일시적으로 직장 잃은 노동자들이 적절한 취업 대상을 찾을 때까지 최소 생계비용을 지원하는 거다. 그러니 위의 발언은 이 제도의 역사적 배경과 기초 개념조차 모르는 무지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실업급여는 정부가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다. 사회보험으로서 고용보험을 의무 가입하여 일정기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그렇게 자신이 낸 보험료에다 고용주 부담금을 (고용보험기금을 기반으로 해서) 되돌려 받는 것이다. 이 기본적 사실관계를 완전히 혹은 의도적으로 본말전도한 것이다. 

 

2.
심지어 해당 공청회에서는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이... 실업급여 받는 기간에 해외여행을 가고 샤넬 선글라스를 사거나 옷을 사거나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대상을 갈라치기 하고 타자화시키는 악의적 선동이다. 취업난과 해고의 2중고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로서 청년과 여성을 꼭 집어 ‘도덕적으로 해이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4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정권 핵심은 외교, 경제,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조차 두려워하는 대중국 디커플링을 과감히 추진 중이다. 내생적 경제 변수에 더하여 불황의 공포가 더욱 커지는 이유다. 거기에다 현 정권 들어 신자유주의적 고용 구조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이런 환경 아래 실업의 공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실업급여의 안전판과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임금생활자는 극소수라는 뜻이다. 

 

나도 30대 시절, IMF 구제금융 사태에 휩쓸려 두세 달 실업급여를 탄 기억이 있다. 그때의 우울함과 불안함은 평생을 두고 영혼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처럼 실업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인간에게 노동은 단순한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존재적 자존감을 유지시키는 핵심 전제이기 때문이다. 직업이란 것은 사회적 자아에 대한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해당 공청회에서 고용노동청 담당자는 “실업급여 신청자들이 웃으면서 방문한다. 어두운 얼굴로 오시는 분은 드물다.”고 말했다. 경제적, 개인적 궁지에 몰린 약자에 대한 왜곡이고 모욕이다. 역지사지라 했으니, 해당 공무원이 한번 실직을 경험해보시기 권한다. 과연 웃음이 나오는지 밝은 얼굴로 집 근처 고용센터 방문이 가능한지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3.
폭우 재해로 전국에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기억에도 생생하다. 지난 해 8월 서울에도 수해가 덮쳤다. 빗물이 넘쳐들어 세 사람이 숨진 신림동 반지하방 현장에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근데 여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 같은 해 10월에 백 오십 구 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현장을 둘러보면서는 이런 말을 했다.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

 

나는 재난현장에서 대통령이 진정으로 타인의 비극을 아파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모든 발언이 국외자요 구경꾼의 시각이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시럽급여’ 논란을 보면서 이 정권의 사람들이 왜 상식을 벗어나는 저런 행동과 발언을 버젓이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다. 힘 있는 자의 태도는 그렇게 영향력이 크다. 권력 최상부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무하다 보니 아래 사람들에게도 그것이 번져간 것은 아닌가. 

 

이번 시럽급여 파문은 정부여당이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근본적 관점과 직결되는 사건이다. 약하고 다친 구성원들의 처지에 대한 무신경을 넘어 그것을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정권의 핵심들이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의 삶과 유리된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감각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다.

 

윤석열 정권을 부르는 평가가 다양하다. 극우적이다, 한 줌의 검사집단이 모든 권력핵심을 장악한 검찰공화국이다 등등. 하지만 나는 이 정권을 비인간의 정권으로 부르고 싶다.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에 극히 둔감한, 비정한 집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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