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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내 안의 공포, 우리 안의 공포. 그 시작은 어디인가

125. 잠- 유재선

 

지난 5월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됐던 유재연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 ‘잠’은 여러모로 산뜻한 느낌을 주는 영화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손익분기점이 80만 명, 곧 제작비가 48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름 영화 시장에서 최대 650만 명을 모아야 ‘본전’을 맞추는 큰 영화들에 비하면 일단 마음을 편하게 한다. 게다가 영화의 완성도, 작품성까지 좋다. 이래저래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가뜩이나 한국 영화에 대한 위기설, 중병설이 크고 넓게 퍼져 있는 상황이다. 너무 돈을 많이 들이는 것에 비해 관객들이 적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가 지닌 본래적 기능들, 세상에 대한 독특한 해석,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무엇의 가치를 구현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잠’은 신선한 데뷔작이자 의외의 구원자 같은 느낌마저 준다. 한국 영화가 현재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지침 같은 것을 준다. 영화는 역시 돈과 물질이 아니라 정신과 아이디어, 의지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잠’은 일종의 혼합 장르, 융합의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은 심리 스릴러이다. 중간쯤에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였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오컬트 영화(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 현상을 다루는 영화. 심령/무당/종교/빙의 영화)가 된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가족 드라마가 된다.

 

그 인간주의의 결론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결국 이것저것의 기법을 뒤섞은 하이브리드(異種) 공포영화라는 얘기인데 그래서 이상하기보다는 오히려 재미가 더해진 작품이다. 기이하게 잘 비벼졌다는 느낌을 준다.

 

이게 뒷걸음질 치다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매 순간마다 연출과 기획이 그렇게 디자인을 한 것인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하겠으나 전체적으로 설득력이 주어진다면야 굳이 그렇게 뾰족하게 굴 필요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영화의 결론이, 주인공의 ‘인간적 선택’이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해 준다.

 

 

주인공 수진(정유미)은 막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이다. 대기업 유통 업체를 다닌다. 그녀의 남편 현수(이선균)는 연극배우이자 단역 배우이다. TV 드라마에서 아주 작은 역을 한다. 당연히 둘의 생계는 그리 풍족하지 않다.

 

하지만 수진은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좌우명, 가훈 아닌 가훈을 집안에 걸고 산다. 이제 곧 셋이 될 판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극복하지 못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가난하지만 착한 남편이 밤마다, 그것도 자면서,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침대 끝에 우두커니 앉아서 눈은 반쯤 뜬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누가 들어 왔어” 다음 날은 자신의 뺨을 피가 나도록 긁어서 큰 상처를 입는다. 어떤 날은 냉장고를 활짝 열어 둔 채 생고기를 우걱우걱 먹어 대지를 않나 급기야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 하지를 않나 점점 더 기절초풍할 일들을 벌인다.

 

현수는 곧 병원에서 진단을 받게 되는데 증상에 비해 극히 일반적인 몽유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현수에게는 잠이 문제다. 수면장애는 고치면 된다. 최소한 약을 먹으면 이런저런 이상행동은 완화가 된다. 적어도 누구를 해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수진은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 후추가 ‘참변’을 당한다. 수진은 태어날 아이 때문에 긴장한 상태이다. 결국 그녀는 출산을 한 이후부터는 자신 역시 일정한 노이로제 증상을 겪는다. 엄마란 존재는 아이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대상은 그 누구라도 적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수진에게 현수가 점점 그런 존재가 되어 간다. 그녀의 눈에는 핏발이 선다. 이제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그 가공할 공포는 현수의 병에서 시작해 현수와 수진의 부부관계가 만들어 내는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가장 신뢰하고 끝까지 함께 해야 할 관계, 곧 부부 사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며 균열을 전제로 한 계약 관계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관객들은 마음속에서 자신이 수진을 향해 외치는 마음속의 소리를 듣게 된다. ‘어서 집에서 애를 데리고 나와! 그에게서 떨어져!’ 근데 잠깐만! 이 모든 것이 다 수진의 환상이거나 수진이 교묘하게 남편 현수를 가스 라이팅 해 벌이는 음모이자 수작이라면?

 

그렇게 되면 얘기는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튀게 될 것이다. 영화 ‘잠’의 매력은 극을 따라가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스토리 라인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저거 여자가 다 꾸미는 거 아냐?

 

남자가 사실은 몽유병인 척, 여자를 죽이려고 저러는 거 아냐 등등. ‘잠’은 점점 흥미로운 이야기의 골짜기로 관객들을 몰아가기 시작한다. 그 점층과 점강의, 리드미컬한 전체 스토리 구조가 매혹적이다.

 

 

스포일러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한 가지 중요한 팁을 노출시키자면 바로 저 대사, 그러니까 현수의 저 말, “누가 들어 왔어”에 많은 단서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짝, 그렇다면 저 ‘누가’는 과연 누구인가,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가 아니다. ‘어디에’이다. 무엇이든 누구이든, 어디에 들어왔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영화는 그 대목이 드러나면서부터 롤러코스터를 탄다.   

 

어쩌면 사람이나 사회나 뭔가의 생각과 이즘(ism), 이슈와 어젠다, 이상한 사람(정치나 종교 지도자)이 잘못 들어 오(유입 되)면 일대 혼란을 겪게 된다. 일상이 악몽이 된다. 대부분의 공포영화가 그렇듯이 영화 ‘잠’ 역시 개인의 이상 행동을 통해 사회와 체제의 광기로 이어 가려 한다.

 

내 마음속의 공포는 어쩌면 사회와 구조에서 기인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내 안의 공포는 우리의 공포이다. 가장 익숙한 것, 낯익은 공간은 언제든지 적과 악마의 소굴로 바뀔 수가 있다.

 

공포는 늘 일상적인 것이라는 이 놀라운 자각은 모든 것에 대한 불신의 지옥으로 사람을 추락시킨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일밖에 남지 않은 셈이 된다. 불신지옥은 맹신 지옥을 부른다. 또 다른 잘못된 믿음을 불러온다.

 

 

이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알고 보면, 그리고 사실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랑이다. 모든 건 사랑 때문에 시작됐다. 영화에서 나오는 무당은 수진에게 쩔렁쩔렁 방울을 흔들며 이렇게 말한다.

 

“두 남자와 같이 사는군.” 수진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냐는 표정을 짓지만 불길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한다. 두 남자는 누구인가. 현수 말고 또 집안에 누가 있는가. 누가 그녀를 또 사랑한다는 말인가. 사랑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육욕인 것인가. 수진은 점점 미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모든 공은 현수에게 넘어가게 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다.

 

다소 뜬금없게도 ‘잠’은 2009년에 발표됐던 영화 ‘불신지옥’을 떠오르게 한다. 다른 듯 다르지 않고 같은 듯 전혀 다르다. ‘불신지옥’은 더 참혹했지만 이번 ‘잠’은 어렵사리 그 잔혹의 정서를 뛰어넘는다.

 

’불신지옥’의 이용주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명작 ‘살인의 추억’의 연출부 출신이다. 이번 ‘잠’의 유재선 감독은 봉준호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봉준호의 그림자가 10년 넘게 한국 영화계의 뒷배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우리 사회에 누군 가가 들어왔다. 그 누군가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갓 태어난 아기가 있는 신혼집을 지켜야 한다. 젊은 사람들, 아기들을 지켜야 한다. 영화 ‘잠’은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기이한 불안증과 그로 인한 공포를 다룬다. 특수가 보편을 규정한다.

 

특별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세계 어디서든, 또 누구이든 똑같이 겪는 불안함이다. 이 영화가 칸 비평가 주간을 비롯해 스페인 시체스 영화제 등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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