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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 이철호의 전성시대③]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꿈을 향해 달려가라

구속과 팀 해체 등 시련 있었지만 최고 밴드를 향한 꿈 포기한 적 없어
최장수 밴드 사랑과 평화는 꺽이지 않는 믿음 있었기에 가능

1970년대 록 음악은 최고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유신정권은 젊음과 저항의 상징인 록 음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수많은 록 음악이 금지곡으로 낙인찍혔고 나중에 또 얘기하겠지만 일명 대마초 파동으로 록 밴드 멤버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대한민국 록 음악은 한순간 암흑기를 맞게 된다.

 

 

1970년 난 <습관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습관성의약품관리법>은 마약을 제외한 의약품과 대마초를 규제하는 법률로 질풍노도의 시기에 겁 없이 대마에 손댄 내 잘못이었다.

 

서울구치소에서 2개월 형을 살고,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함께 했던 팀은 이미 해체됐고, 멤버 3명은 그 사이 해군 홍보단에 입대했다.

 

인천에서 자숙하며 쉬고 있을 때 국내 최초의 고고클럽 닐바나(Nirvana)에서 밴드 활동하던 그룹 파이오니아의 리더 차영수 형님의 부름을 받았다. 당시 인기 그룹 파이오니아의 멤버가 대학을 간다며 탈퇴하는 바람에 자리가 생긴 거다.

 

 

당시 닐바나엔 정말 잘나간다는 밴드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윤항기와 키브라더스, 차영수와 파이오니아, 피닉스, 데블스 등 최고의 밴드들과 함께 멋진 록 밴드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이후 파이오니아는 뜨거운 인기를 등에 업고 클럽 풍전으로 스카웃 됐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때 입대 영장이 날아왔다. 솔직히 아쉬웠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남아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져야 할 병역의 의무이기에 해군 홍보단에 지원해 해군 본부가 있는 경남 진해로 내려갔다. 고된 훈련병 생활을 하며 땅바닥을 박박 기고 있을 때 인사계에서 호출이 왔다. 이유는 집행유예 전과로 인한 소집해제!

 

다시 인천으로 가는 귀향 열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어린 마음에 이 한 번의 과오가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밀려왔다.

 

소집해제 후 파이오니아로 돌아왔다. 이때 이남이 형과 최이철이 같이하던 5인조 "영에이스"를 만났다. 파이오니아의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에 있는데 이남이 형이 찾아와 다짜고짜 던진 말이 기억난다. “철호야! 나랑 같이할래?”

 

인생을 돌아보니 질풍노도의 시절 정말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특히 60-70년대는 나라도 힘들었고 대중 음악 시장도 무척 열악했다. 하지만 난 꿈이 있었고 꿈꾸는 것을 즐겼다. 비록 힘든 시기를 보내며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만약 꿈을 포기하고 좌절했다면 지금의 최장수 밴드 ‘사랑과 평화’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 글 = 이철호 / 우경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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