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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평화 이철호의 전성시대 ①] 중학생 5명이 모여 만든 무명 밴드에서 시작된 '전설'

대한민국 최장수 밴드 사랑과 평화, 롱런과 성공의 비결은 '사람'

내 이름은 이철호, 1978년 '한동안 뜸했었지'로 공전의 히트를 친 펑키 록 밴드 '사랑과 평화'의 메인보컬이다. 대한민국 최장수 밴드 '사랑과 평화'가 올해로 데뷔 46주년을 맞았다. 돌아보면 참 다사다난했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반세기 가까운 세월 '사랑과 평화'가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제 조심스럽게 일평생 '사랑과 평화'와 함께 한 내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그 비결을 풀어내고자 한다.

 

 

1966년 송도중학교,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농구 스타 김동광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부터 이미 차세대 농구스타로 명성이 자자했던 김동광. 그와 나는 송도중학교 제47회 동창이다. 

 

동광이에 비해 키도 작고 볼품없는 난 별 볼일 없는 그저 될성부른 나무에 불과했다. 그 시절 난 몇몇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다. 그때 나이 열다섯, 한창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을 시기이다 보니 그저 여학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든 밴드였다. 훗날 이 작은 중학생 밴드가 '사랑과 평화'의 태동이 될 것을 당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름도 없는 중학생 밴드는 ▲보컬 이철호 ▲기타 최재홍·김남수 ▲드럼 서명군 ▲베이스 김인수 그때부터 난 이미 밴드의 메인 보컬이자 리더였다. 우리 다섯 멤버의 스승은 사람이 아닌 인천 중앙동에 있는 외국인 클럽의 연주 무대였다. 외국인 전용 클럽인 탓에 열다섯살 한국인 중학생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연주를 보기 위해 매일 클럽으로 들어가는 개구멍 주위를 기웃거렸다. 무대 뒤에 숨어 공연을 훔쳐보면서 그날 본 연주를 되뇌어 따라 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러다 그곳에서 밴드를 하고 있는 이경천(김훈과 트리퍼스, 기타) 형을 만났다. 경천이 형은 중앙동 캘리포니아 클럽에서 음악을 하던 프로 뮤지션이었다. 그 당시 우리의 눈에 비친 경천이 형은 잘 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 치는 완벽한 우리의 우상이었다.

 

지금도 가끔 전화하면 70세가 넘은 내게 "너 장가 안가냐?" 라며 짓궂은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 경천이 형이다. 음악이 연이 되어 함께 해 온 사람 중에 가장 오랜된 나의 인연이다. 돌이켜보면 경천이 형은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을 알아봐 준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 그 시간 속에는 중학교 시절 함께 음악했던 친구들을 비롯해 참 많은 사람이 있었고 또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있었다. 펑키 록 밴드 '사랑과 평화'가 46년간 사랑받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경천 형과 무명의 중학교 밴드를 비롯한 나의 사람들 그리고 늘 옆에서 지지해주던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글 사랑과평화 리더 이철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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