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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도광산 추도식 갈팡질팡…외교부, 왜 이러나

전시물엔 ‘강제’ 표현 전무, 추도사엔 ‘사과’ 표현도 빠져

  • 등록 2024.11.26 06:00:00
  • 13면

일제강점기 시대에 숱한 한국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희생당한 일본 ‘사도광산’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또다시 일본에 뒤통수를 맞았다. 일본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희생자들을 위해 매년 추도식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참혹한 피해의 당사국인 한국의 입장이 존중되는 추도식을 마련하는 것이 상식이다. 일본이 상식을 보란 듯이 깼음에도 우리 외교당국은 갈팡질팡하면서 나라의 자존심을 구겼다. 도대체 왜 이러는가.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무려 1500여 명의 조선인이 끌려가 처참한 강제노역을 당했던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일본 정부는 2010년 이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으나 한국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조선인 강제 노역 전시물 설치’ 등을 약속하고 지난 7월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의 전원 동의를 얻어냈다. 일본은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는 추도식 개최도 약속했다. 


그러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는 “구미의 기계화에 견줄 일본 독자 기술의 정수”라며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환영하는 입장문을 내면서도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강제노동’ 문구 대신에 당시의 생활상을 설명하는 것에 양해를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진위는 아직 가려지지 않고 있다. 


추도식 개최는 국가 간 약속임에도 일본은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전시물에 ‘강제’ 표현이 없는 데다가 추도식 명칭도 누구를 추모하는지조차 모호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했다. 그야말로 어물쩍 형식적인 ‘추도식’을 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누가 보더라도 일본 정부의 진정성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일본 정부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일본 대표로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명료하게 드러났다. 추도사 내용을 두고 일본과의 이견을 조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우리 외교부는 결국 추도식 하루 전날인 지난 23일에서야 ‘보이콧’을 결정했다.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나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개최한 추도식에 우리 정부와 강제노동 피해자 유족들은 끝내 불참했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사에서 “전쟁 중에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해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며 “종전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감스럽지만 이 땅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고 언급했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강제 노역’의 진실이 명시되거나 ‘사과’의 뜻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잔혹하게 끌려와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는커녕 왜 희생됐는지에 대한 성격 규명조차 없이 노동자들의 영혼을 뒤섞어 두루뭉술 애도의 뜻을 밝히는 ‘쇼’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애초 한국인을 추도할 뜻이 없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추도식’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 간사한 말로 던진 속임수임이 분명하다. 


분통이 터지는 건 질질 끌려가는 인상을 주는 우리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도 희생자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센터를 현장이 아닌 도쿄에 세우고 강제성도 부인해 약속을 어긴 바 있다. 연거푸 뒤통수를 얻어맞는 외교부의 무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나. 


윤석열 정부가 실용적 접근을 통해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의 회복을 위해 애쓴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선의만 믿고 막연한 기대에 의지하는 듯한 어리숙한 외교에는 실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외교는 더 이상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본이 물컵의 반을 채워 화답할 것’이라더니 그런 날은 대체 언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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