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행을묘 출발 10여 일 전인 1795년 2월 25일, 정조 임금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창덕궁의 후원에서 가마를 타고 가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윤2월 9일 아침 다섯 시, 정조가 평소 도서관으로 쓰던 창경궁의 영춘헌(迎春軒)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거둥했다. 곧 수정전(壽靜殿)에 들러 자신보다 일곱 살 많은 할머니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께 인사드린 후 돌아왔고, 6시 45분에 행군을 알리는 구령이 세 번 울렸다. 드디어 영춘문을 나서면서 7박 8일의 원행을묘가 시작됐다.
창경궁의 천오문-만팔문-보정문-숭지문-집례문-경화문-동룡문 등 작은 문을 지나 건양문(建陽門)을 통과했다. 이어 창덕궁의 외전(外殿)과 내전(內殿) 경계의 숙장문(肅章門)을 지나고 진선문(進善門)-금천교(禁川橋)를 통과하여 정문 돈화문을 나섰다. 궁궐 밖 참배 길의 시작이다.
필자는 2024년 9월 14일 토요일 9시 돈화문에서 원행을묘 백리길을 출발했다. 정조의 행렬은 필자보다 두 시간쯤 일찍 출발한 것인데, 부지런하거나 환갑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가는 엄청난 규모라서 이렇게 일찍 출발한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먼 길을 갈 때 최대한 일찍 출발하여 최대한 늦게까지 걸었다. 현대인보다 빨리 걸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대한 오래 걸었기 때문에 현대인이 상상하기 힘든 하루 평균 40km를 걸어갈 수 있었다.
역사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길 위에 켜켜이 쌓여온 다양한 역사의 흔적과 이야기를 찾아내어 보고 느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또다시 살아갈 내일의 일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것이 최상이다. 정조의 원행을묘 백리길에는 정조 원행의 흔적과 이야기 외에도 우리의 선조들이 수백 수천 년 동안 만들어 온 역사가 많다. 그 첫 흔적을 돈화문의 문틀 속에서 만난다.
9시 정각이 되면 육중한 돈화문이 열리고, 문틀 안에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창덕궁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지고 놀라운 풍경이 액자 속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이 풍경은 아무 데서나 보이지 않아서 창덕궁을 방문한 수십, 수백 만 명의 관람객 중 이 풍경을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 같다. 일반적인 관람 동선에서는 안 보이기 때문이다.
창덕궁 관람 매표소는 돈화문 서쪽에 있다. 여기서 표를 산 사람들은 곧바로 돈화문 아래로 직진하여 창덕궁으로 들어가 관람을 시작한다. 이런 관람 동선이라면 그 풍경은 관람객의 시야에서 완전히 숨어 버린다. 그러니 표를 산 다음에 바로 돈화문으로 직진하지 말고 돈화문 앞쪽 진입로 끝의 계단 아래로 가라. 그러면 놀랍고 멋진 풍경이 돈화문의 문틀 속에 귀신처럼 나타난다. 북한산 보현봉(714m)의 웅장하고 거대한 화강암 정상이 문틀 속에 쏙 들어가 있다. 이런 풍경이 세계 어디에 있을까? 아마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서울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역사 풍경이 정말 많다. 그중에서도 최고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돈화문 문틀 속의 보현봉 그림을 뽑겠다. 필자의 절친 명지대 미술사학과의 이태호 석좌교수에게 이 풍경을 보여드리니 감탄하며 그 풍경을 만든 이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전문가의 진심이라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