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도 나는 파미르로 향했다. “해마다 가는 이유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그곳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이 있고 만남을 통해 내가 새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정은 알마티에서 시작해 키르기스스탄의 오쉬를 거쳐 파미르로 진입하는 루트를 택했다. 올 봄 부터 카자흐스탄 국적 항공사인 ‘에어 아스타나’가 알마티-오쉬 노선을 주 4회 취항했는데, 이를 이용하면 두샨베를 경유하는 것보다 파미르 초입까지 도달하는 이동 시간이 이틀이나 단축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특히 좋아하는 파미르 중의 ‘찐 파미르’, 한겨울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을 견디며 야크을 유목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동파미르 사람들을 만나는데 시간을 좀 더 할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순탄치 않았던 출발, 그러나 흔들림 없는 여정
하지만 여행은 처음부터 매끄럽지 않았다. 출발 며칠 전 항공사에서 비행기 결항 소식을 알려왔다. 이미 예약을 해 둔 여정상의 숙소 예약을 이틀 뒤로 조정해야 하므로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지만, 달리 뾰쪽한 수가 없었다.
드디어 알마티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키르기스스탄 제2의 도시이자 파미르고원의 초입에 있는 오쉬로 향했다. 오쉬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일리야스로부터 소개받은 오쉬의 대표적인 샤슬릭(숯불 꼬치구이) 집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이 문명 세계에서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생각으로 ‘짜르스키 드보르’라는 식당에서 양고기 샤슬릭을 먹었다. 오쉬의 양고기 샤슬릭의 크기는 알마티에 비해 다소 작았고 육즙 풍부한 알마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간이 잘 맞아서 맥주 한잔 마시며 먹기엔 최적이었다.
다음날, 드디어 파미르를 향해 길을 나섰다. 오쉬를 출발한 짚차가 세 시간 만에 파미르의 관문인 사르타쉬에 도착했다. 이곳은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고봉들이 파미르 진입을 허용하지 않을 태세로 마치 성벽처럼 버티고 서 있는 장관을 연출하는 마을이다. 해발 3000m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의 ‘아쿤’이라는 식당은 파미르 여행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과 시작하려는 여행자들이 서로 뒤섞여 여행 정보를 주고받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레닌봉(7134m) 베이스캠프에서 고산에 적응하다
사르타쉬 마을을 출발한 지 1시간 반 만에 드디어 아칙-타쉬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해발 7134미터의 위용을 자랑하는 레닌봉을 품고 있는 이곳은 식당과 작은 바 그리고 라운지와 숙소가 잘 갖춰져 있어 세계 곳곳에서 모인 산악인과 트래커들의 성지이다.
해 질 무렵, 2층 라운지에서 와인 한잔을 곁들이며 유럽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비가 내려 초겨울 같은 한기를 느낀 파미르의 첫날 밤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내 몸은 서서히 고산에 적응해 나갔다.
다음 날 아침 숙소인 유르타(유목민 천막)의 문을 여는 순간 전날 밤 비로 인해 보지 못했던 레닌봉의 설산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손을 앞으로 뻗으면 레닌봉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비현실적 풍광에 압도되고 말았다.
나는 그 활기를 뒤로한 채 무르갑으로 향해 길을 나섰다. 아칙-타쉬에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을 이루는 크즐-아트 패스를 넘어 국경을 통과하기까지는 약 두어 시간이 걸렸다. 고도는 어느새 4300미터를 넘겼고, 바람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다행히 국경에서의 출입국 절차는 순조로웠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사이의 국경은 올해 봄, 양국 정상 간의 평화 합의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과 외국인 차량을 제외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차량과 국민은 국경을 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자는 국경에서 자동차를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몇 년간 긴장 속에 막혀 있던 국경이 평화적으로 풀리면서, 이제 다시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파미르 하이웨이를 달리다
키르기스스탄 출국 심사는 의외로 빠르게 끝났다. 하지만 자동차로 30여분 간을 달리는 중립지대를 지나 타지키스탄 국경 검문소에 도착하자 사정은 달랐다. 입국 심사와 세관 검사가 끝나기까지 꼬박 한 시간 반이 걸렸다.
크즐-아트 패스와 보르-도보 검문소를 지나, 랜드크루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라 불리는 파미르 하이웨이로 접어들었다. 평균 해발 4000m, 산소가 부족해 숨이 차오르는 고도이지만, 차창 밖 풍경은 그 불편함조차 잊게 했다.
해발 4655m 악바이탈 패스를 넘을 땐,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랜드크루저마저 숨을 몰아쉬는 듯했다. 황량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경은 마치 다른 행성에 들어선 듯했고, 나는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3시간 남짓 달린 끝에 도착한 무르갑. 타지키스탄에서 가장 높은 도시답게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매서웠지만, 게스트하우스 안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다.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을 즐겨본다는 그 분은 내가 출연한 파미르 편을 여러 번 돌려봤다고 했다. 그분은 정년퇴직 기념으로 파미르 라이딩을 기획했다고 했는데, 파미르가 이렇게 광활할 줄 알았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무르갑에 도착하기까지의 힘들었던 여정을 풀어놓았다.

파미르의 심장을 향해
다음날, 무르갑을 떠나 해발 3700m 고산호수 불룬쿨을 향했다. 알르추르 마을에서 파미르 고원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아스말’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소금을 뿌린 ‘아스말’을 프라이팬에 살짝 튀기듯이 구워 냈는데, 그 맛은 굴비구이 못지않은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맛이다.
불룬쿨 온천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파미르 하이웨이 중에서 특히나 무르갑에서 호록까지 구간은 아스팔트 도로 곳곳이 패여서 차들이 제대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마침내 불룬쿨에 도착. 불룬쿨의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장거리 이동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파미르 고원의 차가운 바람과 별빛이 어우러진 온천욕은 그야말로 별천지의 경험이었다.
카라반이 되어 걷다
불룬쿨에서 하루 더 머물며 야시쿨 호수 트래킹에 나섰다. 유르타 주인장이 직접 길 안내를 해주며 얕은 물길을 건너 호수에 이르렀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야시쿨의 고요한 물빛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약 3시간짜리 트래킹 코스를 선택해서 걸었다. 도중에 무너져 내린 카라반 사라이(옛 상인들의 숙소) 터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불과 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과 중국을 잇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번창했던 파미르를 상상해 보았다.
파미르를 지나갔던 카라반들은 보통 하루 이동 거리가 30~40km였기 때문에, 이 간격으로 숙소와 보급처가 운영되었는데, 파미르 중에서 가장 오지로 취급되는 불른쿨 근처에만 5곳의 카라반 사라이가 있었다고 하니깐 파미르에서 나오는 야크 가죽, 모피, 고산 약재 등이 카라반들의 인기 거래 물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중국의 당나라 기록에 따르면, 파미르를 지나던 사절단과 상인들이 “하늘과 맞닿은 듯한 산길, 혹독한 바람, 그러나 유럽·인도와 연결되는 길”이라 묘사해 놓고 있다.
강렬한 햇볕에다 고산이라서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3시간이 조금 걸린 야시쿨 호수 - 카라반 사라이 - 불룬쿨 까지의 트래킹 코스는 파미르고원 여행 중에서 보기 드물게 큰 성취감은 느끼게 해주었다.

파미르의 별빛
이튿날, 우리는 다시 4655m 악바이탈 패스를 넘어 카라쿨 호수에 도착했다. 파미르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마지막 숙박지. 저녁이 되자 호수 위로 은하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롯이 별빛과 고요에 잠기는 순간 이곳이 왜 ‘파미르의 심장’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귀한 석탄을 아끼지 않고 물을 데워주었다. 오히려 찬물이 아쉬울 만큼 뜨거운 시골식 사우나 체험 낡았지만 정성 어린 그 따뜻함이 이 여행의 마지막 선물처럼 느껴졌다.
파미르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따뜻한 환대를 잃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파미르인들과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을 만남으로써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여행지이다. 파미르는 불편함을 즐길 수 있는 자에게는 최고의 여행지이다.